전두환 손자 환대한 '5·18민주묘역'… 참배 거부당한 사람은

입력
2023.04.02 07:00
전우원씨, 광주 시민들 따뜻한 환영 속 참배
윤석열 대통령, 홍준표 대구시장은 '참배 거부'당하고
특전사동지회는 '도둑 참배'하기도


“우원씨 환영합니다!”

“우원씨 응원합니다. 힘내세요!”

지난달 31일 낮 광주 북구 국립5·18민주묘지. 입구인 ‘민주의 문’에 전두환 전 대통령의 손자인 전우원(27)씨가 들어서자 광주 시민들은 너도나도 환영의 인사를 건넸다.

앞서 5·18기념문화센터에서 열린 ‘5·18유족, 피해자와의 만남’에서도 유족들에게 엎드려 사죄하는 우원씨를 유족들이 일으켜 세웠다. 그들은 “손자라도 와줘서 고마워요”, “끝까지 용기를 잃지 말아요”라며 우원씨를 안아주고 등을 토닥였다.

1980년 5월 무고한 시민들을 무력으로 진압해 수천 명의 사상자를 낸 전두환 당시 대통령은 2021년 사망 전까지 사과 한마디 없었다. 그러나 우원씨는 지난 3월 13일부터 미국에서 유튜브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지속적으로 할아버지의 잘못을 사죄하며 한국까지 찾아왔고, 환대받았다.

우원씨도, 광주 시민들도 모두 울었던 이날 5·18민주묘지는 그 어느 때보다 치유와 화해의 기운으로 충만했다. 그러나 민주묘역은 “사과하겠다”는 사람이면 누구나 참배 가능한 곳은 아니다. 진정성이 없다면, 유족 및 5·18 단체들은 희생자들이 안치된 이곳에 발을 들이지 못하게 한다.


"전두환 정치 잘했다" 발언으로 2번 거부당한 윤석열 대통령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두 차례나 5·18민주묘역 참배를 거부당했다. 발단은 2021년 부산 해운대구 당원협의회를 방문한 자리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이 군사 쿠데타와 5·18만 빼고는 그야말로 정치는 잘했다”고 발언한 것이었다. 비판이 일자 '송구하다'고 한 후 SNS에 반려견 토리에게 과일인 사과를 주는 사진을 올리면서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비는) 사과를 희화화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결국 발언 22일 만인 2021년 11월 민주묘지를 찾았지만 광주 시민들의 격렬한 항의로 민주항쟁추모탑 50여 m 앞 광장에서 묵념으로 참배를 대신할 수밖에 없었다. 3개월 뒤인 지난해 2월 다시 한번 민주묘역을 찾았지만 5·18유족들이 제단 앞에서 침묵 시위를 벌이며 참배를 거부, 분향은 하지 못한 채 추모탑에서 약 35m 떨어진 곳에서 묵념만 하고 돌아가야 했다.




"5·18 유공자 명단공개하라" 폄훼 계속한 홍준표 대구시장

홍준표 대구시장은 지난해 11월 민주묘역에 참배할 예정이었으나 5·18단체의 극렬한 반대에 부딪혔다. 홍 시장이 지난해 6월 MBC 100분 토론에 함께 출연한 강기정 광주시장에게 “유공자 명단을 공개하라”고 발언한 것이 문제였다. '5·18 유공자 명단 공개'는 온라인 커뮤니티 ‘일간베스트’ 등 극우단체가 5·18을 폄훼하려는 의도로 과거부터 외쳐 온 구호였다.

홍 시장은 앞서 2019년에도 “국가유공자는 3대까지 특혜를 받는다”며 명단 공개를 주장했다. 그러나 1998년 조성된 5·18기념문화센터 지하에는 유공자 4,000여 명의 이름과 생년월일이 공개돼 있다. 또 현행법상 개인 동의 없이는 명단을 공개할 수도 없는데, 이를 알면서도 계속해서 명단 공개를 요구하고 있다.

이에 5·18 관련 단체들이 "사과하지 않으면 참배를 막겠다"고 항의했고, 홍 시장은 사과 대신 참배 계획을 취소했다.


'군사작전'하듯 ‘도둑 참배’한 특전사동지회

최근에는 특전사동지회가 광주 시민들의 격렬한 반대를 피해 몰래 참배한 일도 있었다. 지난 2월 5·18 관련 단체 3곳 중 2곳(5·18민주화운동부상자회, 5·18민주화운동공로자회)은 특전사동지회와 ‘용서와 화해를 위한 대국민 공동선언’을 하겠다며 특전사동지회와의 공동 참배를 계획했다. 5·18 당시 투입된 계엄군은 ‘가해자’가 아닌 명령에 복종하다 정신적·육체적 아픔을 겪은 ‘피해자’라는 게 이 공동선언의 골자다.

하지만 ‘5·18유족회’와 시민단체들은 거세게 반대했다. 책임자들의 발포 명령과 암매장에 대한 진실이 밝혀지지 않았고, 가해자들의 반성과 사과도 없는데 어떻게 '용서와 화해'를 하겠느냐는 것이다. 양측의 물리적 충돌까지 우려될 정도로 반대가 거세자 특전사동지회는 당초 참배 예정 시간보다 4시간 빠른 시간에, 외부에 알리지도 않은 채 ‘기습 참배’를 했다.

떳떳하지 않은 '도둑 참배'인 데다, 군인들에게 학살당한 피해자들이 잠든 곳에 군복 차림에 군화를 신고 참배한 것 역시 예의에 맞지 않은 행동이었다는 비판도 나왔다.


보수당 대표의 ‘무릎 사과’, 노태우 아들의 참배

이 밖에 최근 몇 년간 주목받은 참배들도 있다. 2020년 김종인 당시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 비상대책위원장은 5·18민주묘역에서 무릎을 꿇고 사죄했다. 보수당 대표가 5·18 희생자 앞에 무릎을 꿇고 사죄한 것은 처음이었다. 무릎까지 꿇은 것은, 김 위원장이 오랜 아픔에 대한 너무 늦은 사과를 말로만 하는 것은 부족하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고 전해졌다. 김 위원장은 행방불명자 묘역에서도 최초로 묵념하고 헌화를 했고, 진정성 있는 사과로 평가받고 있다.


5·18 무력 진압의 또 다른 책임자인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남 노재헌(58)씨는 2019년 8월 민주묘지에 참배했다.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의 직계가족 중 5·18민주화운동에 사과한 것은 재헌씨가 처음이었다. 재헌씨는 2021년까지 총 네 차례 민주묘역을 참배했다. 그러나 5·18 기념재단과 관련 단체들은 2021년 성명서를 내고 "노재헌씨의 참배는 의미 있는 일지만 우선돼야 할 것은 노태우 본인의 사죄"라며 재헌씨의 참배가 "노태우 전 대통령의 국립묘지 안장을 목적으로 한 보여주기식 사죄"라고 비판했다.




남보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