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두 번째 일본인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오에 겐자부로의 별세 소식을 들은 뒤 몇 주간 틈틈이 그의 소설들을 읽었다. 세계적 대작가이지만 정작 ‘작가’로서보다 ‘실천적 지식인’으로만 그를 알고 있었다는 어떤 부채감 때문에 책을 읽어 나간 것 같다. 잘 알려져 있듯 그는 반핵운동에 앞장섰으며 평화헌법으로 불리는 헌법 9조를 수호하기 위한 운동에 팔을 걷어붙였던 이른바 양심적 지식인이다. 하지만 그의 작품들을 읽은 뒤 내린 결론은 역설적이게도 일본인들에게 전쟁 피해자들의 고통을 인식시키기란 지난하고, 더욱이 일본인들이 가해의 역사를 인정하는 일은 냉정히 말해 우리의 소망적 사고에 가깝다는 것이라 할 수 있을까.
1935년생인 오에 겐자부로는 천황제를 절대시 하는 황국소년으로 유년기를 보냈으나, 패전 후 미국식 민주주의 세례를 받고 성장한 ‘전후 민주주의 작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평양전쟁에 대한 당초 그의 이해는 일본인들은 전쟁 피해자라는 것. 등단 초기인 1958년 발표한 단편 ‘인간 양(羊)’은 버스 안에서 외국군들의 심기를 건드린 일본인 주인공이 겪는 수모를 다뤘다. 외국 병사들은 주인공의 바지를 벗기고 엉덩이를 두드리는데 ‘양치기 양치기 양양양’이라는 노래를 부르며 제멋대로 희롱한다. 경찰들도 외국군의 문제는 권한 밖이라는 식으로 외면하자 주인공은 엄청난 굴욕감과 수치심을 느낀다. 미군 점령기에 느낀 피해자 체험은 끈질기다. 오에가 70대에 발표한 장편 ‘아름다운 애너벨 리 싸늘하게 죽다’(2007)조차 점령 미군에게 성적 유린을 당한 일본 여성의 생애가 주요 모티프다.
작가의 회고에 따르면, 그가 가해국 지식인으로서 아시아인들의 고통을 자각한 계기는 1990년 김지하와의 만남이다. 히로시마 피폭시민들의 고통을 세계에 알리고 싶다는 오에에게 김지하는 정색하며 “세계는 난징 대학살의 희생자 30만 명을 기억하고 있는가”, “정신대와 강제연행된 사람들을 기억하고 있는가”부터 따지자고 되물어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는 것이다. 이런 양심적 지식인의 씁쓸한 회고는 또 찾아볼 수 있다. 패전 후 전범이 된 조선인 피해자 명예회복 문제에 수십 년간 매달려 온 우쓰미 아이코(82) 게이센여학원대 명예교수. 그녀 역시 “조선을 식민지화한 것도 거의 기억에 가물거릴 정도로 배웠다. 원폭피해 이야기는 우리들에게 ‘가까운 이야기’였지만 아시아를 침략한 것은 ‘머나먼 이야기’였다”라고 회고한 바 있다. 결론은 이들 같은 일본 내 양심적 지식인들조차 대(大)전환적인 각성을 거쳐야 이웃국가의 피해에 공감한다는 것. 침략전쟁 피해자인 우리 국민들의 정서로는 다소 당황스럽지만 보통의 일본인에게 전쟁 가해자로서 역사적 책임감을 기대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터다.
인접국 사이 역사분쟁은 흔한 일이지만 한국과 일본처럼 해결책을 찾지 못하는 경우는 드물 것이다. 해결은커녕 일본의 정치인들은 요즘 ‘우리는 일본이 얼마나 강한지 한국인들에게 알려줘야 한다’는 속셈을 감추지 않고 있다. 이는 한국인들의 피해의식을 고조시키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기존의 역사인식을 수정하지 않겠다는 정서가 강고해지는 양국의 현실을 감안하면 과거사에 대한 양 국민의 인식차는 더욱 커질 것 같다. 안보환경의 변화로 일본사회의 보수화는 거스를 수 없는 수순이고, 그런 점에서 일본사회의 극우화에 제동을 걸 수 있는 최후의 보루인 양심적 지식인들의 입지가 좁아지는 점은 걱정스럽다. 피해자로서의 굴욕감을, 놀랍게도 가해자로서의 책임감으로 전환시킨 오에 겐자부로의 타계가 주는 그늘은 더욱 깊어질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