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에피소드 인도'라는 인도 관련 책을 냈더랬다. 인도와 관련된 흥미로운 얘깃거리들을 다룬 책이었다. 그런데 결과는 만드는 사람들만 재밌다가 말았다.
왜지? 한국인에게 인도는 심리적으로 너무 멀기 때문이었다. 인도는 유럽이나 북미에 비해 거리상으로는 훨씬 가깝다. 그러나 심리적인 거리는 오히려 남미와 비슷하다. 즉 아는 것도, 그렇다고 궁금한 것도 없다는 말씀. 해서 인도 책은 내용을 불문하고 성적이 좋은 경우가 거의 없다.
유럽을 떠올리면, 파리의 에펠탑과 루브르 박물관 그리고 로마의 콜로세움이나 피사의 사탑 등 실로 다양한 단상들이 스쳐 간다. 이에 비해 인도는 델리·카레·요가·힌두교·소 숭배·갠지스강·인더스문명 정도가 고작이다. 사실 인도에 대한 우리의 지식은 유럽은 차치하고, 프랑스나 이탈리아 한 나라보다도 못한 게 현실이다.
더 흥미로운 건 인도의 이미지에서 불교가 잘 떠오르지 않는다는 점이다. 인도인과 매치되지 않는 한옥 속 푸근한 불상의 모습, 불교는 오히려 한국의 전통문화를 대변하는 가치로 인식될 뿐이다. 그만큼 인도는 멀고도 먼 나라이다.
그런데 인도의 몇 안 되는 단상 중 '소 숭배'가 있는 것은 특이하다. 인도에 가서 천연덕스레 거리를 활보하는 소들을 보고 있을라치면, '이건 뭔가?' 싶은 현타가 오곤 한다. 그러다 드는 한 생각! 인도는 원래 아리안족에 의한 유목문화 아니었던가? 붓다 또한 우유죽을 드시고 기운을 차려 깨달음을 얻지 않았던가 말이다! 유목문화는 소를 주식으로 하는데, 어떻게 소 숭배가 가능한 걸까?
사연은 이렇다. 유목문화의 아리안족이 다수의 농경을 하던 원주민과 섞이면서, 기원 전후에 인도는 유목에서 농경으로 변모한다. 마치 청나라의 만주족이 중국 한족에 동화되어 나중에는 자신들의 정체성을 잃어버리는 것처럼…
생산과 문화의 변화로 인해 브라만교는 힌두교로 바뀌고, 불교 역시 기존의 소승(부파)불교 외에 대승불교가 새롭게 등장한다. 농경문화의 확립은 유목과는 달리 농사에 필수적인 소를 잡아먹는 것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여기에는 소가 농경에 있어 사람보다 더한 필수 가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들의 생각 변화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게 마련이다. 조선에서 쌀로 세금을 내는 대동법의 시행에 100년이 넘게 걸렸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인도는 조선에 비해 국토와 인구에서 비교가 되지 않는다. 즉 그냥 놔두면 수백 년도 더 걸릴 일이라는 말씀. 이 때문에 인도는 소를 종교와 결합하는 아주 기막히게 깜찍한 생각을 하게 된다. 소가 힌두교의 최고 신인 시바가 타는 동물(난디)이라는 신성성을 강조한 것이다. 이렇게 소는 신화로 편입되면서 숭배의 대상으로 거듭난다. 그리고 소를 먹는 유목의 모습은 신속히 사라지게 된다.
유목에서 농경으로의 변화에는 채식 문화의 일반화도 존재한다. 인도에는 "천한 것을 먹으면, 그 사람도 천해진다"는 믿음이 있다. 이는 우리 문화에도 있는데, 왕관같이 생긴 녹용(사슴뿔)을 먹으면 그 사람도 귀해진다는 믿음 따위이다.
채식은 육식에 비해 인간의 영혼을 맑게 한다는 믿음이 있다. 인도의 농경문화 확산은 불교와 자이나교의 불살생, 즉 생명 존중과 결합하며 이러한 믿음을 보다 일반화시킨다. '생명 존중'과 '육식 금지'는 엄격하게는 차이가 있다. 그러나 대승불교는 이를 하나로 연결해 고기를 먹지 않는 것을 명확히 한다.
힌두교의 소 숭배는 우리 입장에서는 가십거리로 희화화되기 쉬운 주제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그들 나름의 거대한 문화적인 변화가 깃들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세계 역시 다양한 이유로 인해 점차 채식으로 변모해 가고 있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