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도 없고, 이사회도 없다…KT, 최소 다섯 달 경영 공백 어떻게 메우나

입력
2023.04.01 17:00
8면
주총 직전 사외이사 3명 사퇴, 1명만 남아
새 이사진, CEO 선정까지 임시 주총 2회 거쳐야
"내부 카르텔, 정치권 낙하산서 자유로워야"


본사 근무자만 1만8,300명, 50여 개 계열사에 5만 명 넘는 임직원이 근무하고 매출 25조 원의 KT그룹이 경영 공백 사태를 맞게 됐다. 새 대표를 정하고 이사회를 구성하기까지 최소 5개월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사이 KT그룹은 미래 먹거리 발굴은 물론이고 투자, 인사 등 주요 경영 사항을 처리할 수 없는 혼란에 휩싸이게 됐다.

31일 업계에 따르면 KT 이사회에는 김용헌 사외이사 1명만 남게 됐다. KT 이사회 정족수는 '11명 이하'로, 지난해 말 경영진 인선 작업에 착수할 때까지만 해도 사내이사 2명, 사외이사 8명이 재임 중이었다.

당초 이날 주주총회에서 강충구 고려대 교수, 여은정 중앙대 교수, 표현명 전 롯데렌탈 대표에 대한 재선임 안건이 있었지만 이들 모두 주총 직전 사퇴했다. 다만 이들은 퇴임 이사 자격으로 새 이사회 구성까지 임무를 맡을 전망이다.

대표이사 선임, 사외이사 재선임 등 핵심 안건이 모두 폐기되면서 이날 오전 9시 서울 우면동 KT 연구개발센터에서 열린 정기 주총은 시작 전부터 파장 분위기였다. 일부 주주와 노조 관계자들의 항의와 고성 속에서 주총은 45분 만에 마무리됐다.


구현모, 윤경림 CEO 후보서 사퇴…정치권 외압 논란


KT는 CEO 선임을 두고 지난해 하반기부터 혼란을 겪었다. 구현모 전 대표가 재임에 나섰지만 국민연금과 정치권의 반대에 부딪혀 재임을 포기했다. 새롭게 윤경림 후보가 정해졌지만, 그 역시 주총을 나흘 앞둔 27일 스스로 물러났다. 사외이사들도 각기 다른 이유를 내세우며 사퇴했다. 국민연금과 정치권에서는 이를 두고 '그들만의 리그', '셀프 추천' 등의 비판을 했다.

결국 KT는 박종욱 경영기획부문장(사장)을 중심으로 비상경영체제를 꾸리게 됐다. 이날 주총에서 박 사장은 "당초 계획대로라면 오늘 주총은 대표이사 선임과 경영 관련 의결권을 행사하고 소통하는 자리였다"며 "하지만 그런 자리가 되지 못해 죄송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차기 대표 선임까지 상장법인으로서 절차를 준수하기 위해선 5개월가량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하지만 최대한 단축하겠다"고 했다.

앞으로 KT가 새로운 지배구조를 구축하기 위한 과정이 험난할 것으로 예상된다. KT는 비상경영위원회 산하에 '뉴 거버넌스 구축 TF'를 만들어 차기 대표 선임과 이사회 역할 개선 등을 추진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뉴 거버넌스 구축 TF 구성원의 경우 주주 추천을 통해 외부 전문가로 꾸린다는 방침이다. 뉴 거버넌스 TF가 새로운 지배구조 마련을 위한 가이드라인을 정하고 이를 바탕으로 사외이사 후보를 선정한 다음 선임된 사외이사를 중심으로 CEO 선정 절차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최소 두 번의 임시 주주총회가 필요하다.


'낙하산' 막으려다 '내부 카르텔' 벽 세웠다는 비판


이 과정 역시 국민의힘과 여권의 개입이 반복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KT 스스로 여권이나 대통령실과 성향이 맞는 인사를 중심으로 사외이사진을 꾸릴 것이라는 예상도 있다. 반면 구현모 대표가 '셀프 연임' 논란에 사퇴한 이후에도 KT 전현직 임원들만 다음 대표이사 후보로 선정한 KT 이사회 역시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이에 '정치권 낙하산' 대 'KT 내부 카르텔'의 싸움이라는 지적까지 이어졌다.

이날 주총장에서 김미영 KT새노조 위원장은 "KT에 이권 카르텔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고 우리가 부끄러워해야 한다"면서도 "이권 카르텔의 대안이 정치권 낙하산일 수는 없다. 빠른 정상화를 위해 낙하산 반대 안건을 특별결의할 것을 제안한다"고 밝혔다.

지배구조를 두고 혼란을 겪으면서 피해는 결국 KT 주주들이 입었다. KT 주가는 올해 들어서만 15%가량 하락했다. 국내 주요 통신 3사 중 가장 큰 하락폭이다. 특히 외국인은 올해 KT 주식 1,700억 원어치를 순매도했다.

전문가들은 KT가 정치권의 외압과 KT 내부의 도덕적 해이 모두에서 벗어날 수 있는 새로운 지배구조를 구축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임채운 서강대 경영학과 명예교수는 "해외 주요 기업들은 일찍부터 글로벌 헤드헌팅에 CEO 선정 과정을 맡겨 독립적이면서 경쟁력 있는 후보를 정하는 방식을 써왔다"며 "이번 사태를 자극제 삼아 우리도 기업의 성과와 기업가치를 높이는 사람을 뽑을 체계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안하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