⑧송인성 디셈버앤컴퍼니자산운용 CPO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흔히 쓰이는 용어 중 하나가 '제품-시장 적합성'(Product-Market Fit·PMF)이다. 웹 브라우저 '넷스케이프'를 개발해 유명한 미국의 벤처 투자가 마크 앤드리슨의 정의에 따르면, PMF는 "시장을 만족시킬 수 있는 제품으로 좋은 시장을 찾는 것"을 의미한다. 훌륭한 제품을 만들어도 그에 맞는 시장을 못 찾으면 제품을 만든 노력도 물거품이 될 것이다. 반대로 잠재력이 무한한 시장을 찾아낸들, 제품이 시장을 만족시킬 수 없다면 경쟁사의 공세를 막기 어렵다.
스타트업에게 PMF는 생존의 문제다. 대부분 스타트업은 자사 제품을 돈 내고 사는 고객을 충분히 확보하는 지점에 가기도 전에 실패하기 때문이다. 제품과 시장의 궁합을 맞추는 PMF는 스타트업이 다음 성장 국면으로 넘어가는 문을 열기 위한 '열쇠'나 마찬가지다.
이 열쇠를 찾는 사람이 최고제품책임자(Chief Product Officer·CPO)다. 고객의 수요를 파악하고, 이를 기반으로 비즈니스 모델을 설계하며, 만들어진 제품을 시장에 배포하는 역할까지. 제품의 처음과 마지막을 책임진다. 2019년 국내 최초로 인공지능(AI) 기반 비대면 투자 일임 서비스를 시장에 내놓은 디셈버앤컴퍼니자산운용의 송인성 CPO를 만나, CPO의 세계를 탐구했다.
-디셈버앤컴퍼니는 PMF를 어떻게 찾아가고 있습니까?
"우선 고객 수요를 제대로 파악하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단순히 고객의 목소리를 듣는 게 아니라, 여러 데이터를 세밀하게 분석합니다. 또 저희 비즈니스와 관련된 다양한 사회 현상을 다각적으로 조사하기도 하죠. 그 다음엔 파악한 수요를 바탕으로 제품의 목표를 설정하고, 제품이 목표에 맞게 제대로 동작하도록 기술적으로 구현합니다. 고객이 '왜' 제품을 구매하는 것인지를 파악해, 제품을 '어떻게' 만들어 나갈지를 고민하는 게 PMF를 찾아가는 CPO의 역할인 셈이죠.
-CPO가 엔지니어 출신이냐, 디자이너 출신이냐 등에 따라 CPO의 성격도 많이 달라진다고 들었어요.
"CPO의 역할은 회사의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고객이 필요로 하는 것을 찾아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는 회사가 있을 것이고, 이미 존재하는 제품의 디자인을 개선해 혁신을 꾀하는 회사가 있을 것이며, 기술로 불가능했던 것을 가능케 하는 회사가 있을 수 있죠. 제품의 성격에 따라 디자이너형 CPO, 엔지니어형 CPO, 비즈니스형 CPO 등이 존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모든 제품이 이 세 가지 본질을 다 가질 수도 있지요. 디셈버앤컴퍼니는 2013년 창립 초기 금융투자 방식을 기술로 혁신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엔지니어 출신인 제가 CPO와 최고기술책임자(CTO·Chief Technology Officer)를 겸임하고 있습니다."
-디셈버앤컴퍼니는 금융투자를 어떻게 바꿨습니까?
"우선 기존의 펀드 투자 방식을 살펴볼까요? 먼저 고객의 돈을 맡은 펀드매니저가 자금을 운용할 투자 전략을 세우게 됩니다. 전략에 따라 직접 종목을 매수·매도하는 것은 트레이더에게 위탁하기도 하죠. 저희 제품 중 인공지능 자산배분 엔진인 '아이작'(isaac)이 바로 펀드매니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수백만 고객이 동시에 안정적인 수익을 낼 수 있는 포트폴리오를 설계하죠. 또 이렇게 전략이 수립되면 수백만 고객의 수백만 개의 계좌에서 매수·매도가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야 하는데, 이 트레이딩을 수행하는 플랫폼이 '프레퍼스'(preface)입니다. 아이작과 프레퍼스는 저희 비대면 투자일임 서비스 '핀트'(fint)의 부속품이죠. 아이작과 프레퍼스만 따로 떼어 기업 대 고객(B2C) 또는 기업 대 기업(B2B)로 제공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사람이 아닌 로봇이 투자 자문을 해준다는 '로보어드바이저'(robo-advisor)를 내세운 경쟁자가 꽤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디셈버앤컴퍼니의 서비스는 어떤 차별점을 갖고 있나요?
"디셈버앤컴퍼니의 서비스는 단순히 금융상품을 판매하는 것에 국한돼 있지 않습니다. 저희는 금융투자를 하려는 고객의 행동양식을 효율적으로 바꾸는데 목적이 있습니다. 금융상품의 대체재가 아니라, 투자 형태의 대체재가 되려는 것인데요. 이러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기술적 토대를 가진 회사는 저희가 유일합니다. 단순히 투자 포트폴리오를 만들어내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고객 계좌 내에서 개별적으로 자산을 관리하고 매매하는 것까지 세세하게 수행할 수 있는 플랫폼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죠."
-고객의 최대 관심사는 수익률일텐데, 수익률을 기술적으로 어떻게 높이고 있나요?
"고객의 관심사가 수익률인 건 맞습니다. 하지만 금융 투자의 수익률은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아요. 결과적으로는 높은 수익률을 달성했는데, 그 과정에서 너무 큰 위험을 감수했다면 어떨까요? 그 투자는 지속될 수 없을 겁니다. 그 다음번 투자에서는 큰 손실이 있을 수 있죠. 수익률 외에도 투자에는 고려해야 할 다양한 요소가 있고, 이것들을 고객에게 잘 설명하고 올바른 선택을 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중요할 겁니다. 이 역할을 오프라인에서는 자산관리사가 하겠지만, 온라인에서는 저희 서비스 '핀트'가 할 수 있습니다. 최적의 수익률을 낼 수 있도록 금융공학, 수학, 물리학 등을 연구한 30~40명의 엔지니어들이 기존 인공지능 엔진과 데이터를 지속적으로 개선하고 문제점을 찾는 역할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네이버와 엔씨소프트에서 일하며 여러 서비스 개발에 참여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앞서 경험하신 서비스 개발과 금융투자 서비스 개발은 어떤 면에서 차이가 있나요?
"저는 참 축복 받은 개발자였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우리나라 인터넷 비즈니스는 1990년대 말 태동해서 2000년대 초부터 급격하게 성장했죠. 2000년대는 초고속 인터넷이 시발점이 됐고, 2010년대부터는 스마트폰이 그 역할을 했습니다. 지난 20년간 사람들의 삶이 완전히 뒤바뀌었습니다. 저는 2003년부터 네이버 뉴스, 쇼핑, 증권, 부동산 등 미디어와 커머스 서비스를 만들었고, 2009년부터는 음악 서비스를 개발했습니다. 지하철에서 신문 보던 사람들이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보고, 매장에 가서 입어보고 사던 옷을 온라인으로 주문하는 세상이 열렸죠. 그런데 금융 분야만큼은 유난히 변화가 더뎠습니다. 금융 그 자체로 복잡할 뿐만 아니라, 다양한 규제로 소비자들을 겹겹이 보호하고 있죠. 규제의 틀 속에서 디지털 혁신을 만들어야 낸다는 것이 가장 큰 차이점일 것입니다.
-인공지능 기술이 금융투자 혁신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나요?
"금융투자 분야는 사람의 판단이 개입돼야 하는 부분이 매우 많습니다. 미디어, 커머스와 같은 인터넷 비즈니스들은 대부분의 고객들이 한두 번의 판단만 내리게 되죠. 어떤 뉴스를 볼까, 어떤 물건을 살까 금세 결정을 내립니다. 하지만 금융투자는 한번 투자가 이뤄지면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하고, 다양한 의사 판단이 필요합니다. 사람만 가능했던 이런 판단을 이제는 기술이 고도화된 인공지능이 해결해줄 수 있는 겁니다. 또 이를 통해 고액의 자산가들만 누릴 수 있었던 자산관리서비스가 대중화됐다는 의미가 큽니다. 우리나라는 빠르게 고령화되고 있고, 저금리 기조로 많은 사람들이 꽤 오랜 기간 자금 관리를 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자산관리사에게 맡길 만큼 큰 돈이 아니더라도, 자동화된 투자 일임 서비스를 통해 누구나 쉽게 돈을 불릴 수 있는 기술적 토대가 마련된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꼭 자랑하고 싶은 사내복지제도가 있다고요?
"대기업에 준하는 최상위 수준의 의료 복지가 디셈버앤컴퍼니의 자랑거리입니다. 직원은 물론 직원의 가족(배우자, 자녀, 부모님, 배우자의 부모님)까지 포함해 실손의료보험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특히 실손 보장 내역 중 임플란트 등 고가의 치과 진료도 포함돼 있어 직원들의 만족도가 매우 높은 편입니다. 아울러 모든 직원들에게 40만원 상당의 건강검진비용을 지원하고 있고, 5년 이상 장기근속자에게는 검진비용 200만원을 추가로 지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