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동물원을 탈출했다 포획된 얼룩말 '세로' 사건을 계기로 동물을 가두고 전시하는 동물원의 사육환경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동물원의 존속 필요성에 대한 문제 제기도 나오고 있다. 전문가와 동물단체들은 당장 모든 동물원을 폐쇄하고 동물들을 야생으로 돌려보내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만큼 사육 및 안전 기준을 높이는 것이 우선이라고 지적했다.
28일 서울어린이대공원에 따르면, 그랜드얼룩말 세로(3세∙수컷)는 현재 내실에서 지내면서 심리적 안정을 회복한 상태다. 어린이대공원은 다음 달 말까지 나무로 된 사육장 울타리 재질을 철제로 바꾸고, 현재 1.7m인 높이도 더 높일 계획이다. 조경욱 어린이대공원 동물복지팀장은 "세로가 부모를 잃고 외로워했다"며 "내년에 암컷을 들여와 세로와 합사할 예정이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세로의 탈출 원인은 부모를 잃고 외로움을 느낀 것과 별개로 시설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세로의 탈출은 세로가 울타리에 부딪히면서 울타리 연결 부위가 쓰러졌고 울타리 높이가 낮아지면서 가능했다. 도심을 활보했던 세로의 탈출은 자칫 대형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도 컸다. 동물원에서 수의사로 근무했던 최태규 곰보금자리프로젝트 대표는 "동물원의 울타리는 동물의 생물학적 능력을 고려해 탈출할 수 없게 만들어야 사람과 동물 모두 안전할 수 있다"며 "세로의 스트레스가 컸겠지만 울타리 관리가 제대로 됐으면 세로가 탈출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세로의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해 암컷을 데려오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지만, 동물단체들은 암컷을 데려와 개체 수를 늘리고 번식 가능성을 높이는 것 대신 다른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태규 대표는 "야생 얼룩말 무리는 지속적으로 이합집산이 일어난다"며 "암수가 같이 있는 경우도 있지만 수컷끼리 무리를 짓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최 대표는 "암수 두 마리가 잘 지내지 못할 경우에도 대비해야 한다"며 "최소한의 사회적 관계를 유지할 수 있고, 적절한 공간이 있는 다른 동물원으로 보내는 게 현실적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어린이대공원 측은 "수용할 수 있는 공간을 고려하지 않고 무작정 번식을 시키진 않을 것"이라며 "(사고 전) 세로를 보낼 곳을 알아봤지만 받아주겠다는 곳이 없었고, 사고를 낸 동물을 다른 곳으로 보내는 것도 대안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동물원 동물의 탈출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8년 대전의 한 동물원에서 퓨마 '뽀롱이'가 탈출해 4시간 30여 분 만에 사살됐을 때도 동물원 존폐 논란이 일었다. 하지만 당장 모든 동물원∙수족관의 문을 닫게 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이번 사건을 계기로 현재 동물원∙수족관의 시설을 제대로 점검하고, 사육 기준을 점차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올해 12월 시행되는 동물원 및 수족관의 관리에 관한 법률(동물원수족관법)에는 동물원을 등록제에서 허가제로 바꾸고 검사관제를 도입해 종별 사육기준을 마련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또 고래류 등 전시에 부적합한 종을 지정해 신규 도입을 금지하도록 했다.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이형주 어웨어 대표는 "법이 시행되면 동물시설 사육환경 문제는 상당 부분 해소될 것으로 기대된다"며 "운영 중인 동물원∙수족관은 시설을 개선, 보완할 수 있도록 하고 생물다양성 보전과 교육 기능을 하는 동물원만 남겨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