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일본 미쓰비시를 상대로 "한국 내 자산을 압류해 현금으로 바꿔 배상해달라"고 소송을 제기했다. 정부가 16일 한일 정상회담을 거치며 '제3자 변제'로 배상하겠다고 발표한 15명(생존자 3명 포함)과는 또 다른 피해자들이다. 정부가 배상책임에서 일단 뒤로 물린 일본 전범기업을 상대로 다시 법적 공방이 시작되면서 한일관계 개선에 부담이 커졌다.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은 26일 현재 대법원에 소송이 계류 중인 강제동원 피해자 2명과 사망한 피해자 2명의 유족이 이틀 전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특허권 압류 및 특별 현금화 명령'을 대전지법에 신청했다고 밝혔다. 앞서 2018년 대법원에서 승소하고도 피고기업인 미쓰비시와 일본제철의 버티기로 배상절차가 진행되지 않아 정부가 제3자 변제를 해법으로 발표한 15명과는 다른 경우다.
지난해 7월 기준, 한국 법원에 제기된 강제동원 피해자의 일본 기업 상대 소송은 모두 67건으로 피해자는 110여 명, 유족을 포함하면 1,139명이 된다. 하지만 이 중 최종 확정판결을 받은 경우는 15명에 불과하다. 특히 2007년부터 2년간 정부에 등록된 강제동원 피해자는 21만8,000여 명(생존자는 1,200명가량)에 달해 앞으로도 계속될 소송전이 언제 끝날지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문제는 외교부가 소송을 제기한 피해자들과 접촉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앞서 대법원에서 승소한 15명 원고 가운데 양금덕·김성주 할머니, 이춘식 할아버지 등 생존자 3명을 포함한 최소 4명은 정부의 제3자 변제 해법을 명시적으로 거부했는데도 이들과 제대로 만남조차 갖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일본은 정부의 해법이 완전히 이행되지 못할 수 있다는 핑계로 움직이지 않고 있다. '성의 있는 호응조치'로 윤석열 대통령의 결단에 발맞춰야 하지만 한국 내 여론이 좀처럼 호전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밝힌 강제동원 해법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면 일본도 적극적으로 나서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전직 외교관은 "2015년 위안부 합의 무산과 2018년 강제동원 대법원 판결로 한국에 대한 일본의 신뢰는 바닥으로 떨어진 상태"라며 "한국 내 반발이 거세질수록 일본은 더욱 유보적으로 움직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희식 국민대학교 일본학과 교수는 "정부가 해법은 발표했지만 외교부가 강제동원 피해자들과 만나 어떻게 소통하고 있는지 제대로 알기 어렵다"며 "외교부가 다른 피해자들을 상대로도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공개하고, 이를 토대로 일본의 적극적인 호응을 촉구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