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영우 신드롬의 주인공'도 결국 손들었다. 민간 통신사 KT의 다음 최고경영자(CEO) 후보인 윤경림 KT그룹 트랜스포메이션 부문장(사장)이 갑작스레 사퇴 뜻을 밝혔다. 주주총회(31일)가 코앞이라 회사 안팎은 충격에 휩싸였다. 사상 첫 경영 공백 같은 소용돌이에 빠져들 것을 직감한 이사회는 자리를 지켜 달라며 설득 중이다.
KT는 1981년 한국전기통신공사로 시작해 2002년 민영화 선언 뒤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누가 상황을 이렇게 만들었을까.
윤 후보가 새 CEO가 되는 것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는 1대 주주 국민연금(지난해 말 지분 기준 10.13%), 2대 주주 현대차그룹(7.79%), 3대 주주 신한은행(5.58%)에 눈길이 간다. 이들의 지분을 합치면 약 23% 정도. 반면 지분 약 43%를 갖고 있는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세계적 의결권 자문기관 '글래스루이스'와 'ISS'가 윤 후보 선임 '찬성'을 권고했다. 여기에 33% 지분을 보유한 국내 소액주주 중 윤 후보 손을 들어주려는 이들이 이례적으로 주주 모으기 운동까지 펼치고 있다. 때문에 윤 후보는 주총 표 대결에서 해볼 만하다는 게 재계의 예상이었다. 1·2·3대 주주의 반대가 윤 후보 사퇴 선언의 직접 이유라는 말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윤 후보가 했다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할 것 같다" "내가 버티면 KT가 더 망가질 것 같다"는 말이 열쇠다. 여당인 국민의힘 인사들은 그를 겨냥해 "KT 이사회는 윤 사장을 후보군에 넣어 그들만의 이익카르텔을 만들고 있다"고 비판했다. 현 CEO 구현모 사장의 "아바타"라며 인신공격도 서슴지 않았다. 대통령실도 "공정하고 투명하게 거버넌스가 이뤄져야 한다"며 "그게 안 되면 조직 내에서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가 일어나고 손해는 국민이 볼 수밖에 없다"고 압박했다. 서울중앙지검은 보수단체가 윤 후보와 구 대표를 고발한 사건을 공정거래조사부에 배당했다. 재계 관계자는 "외부에서 윤 후보 본인은 물론 주변을 향한 압박이 거세졌다는 말이 들렸다"고 전했다.
반면 글래스루이스는 "주주들이 우려할 만한 실질적 문제는 없다"는 입장을 냈다. ISS는 보고서에서 윤 후보가 해임될 경우 "기업, 주주 가치가 훼손될 수 있다"며 "윤 후보는 회사 사업 계획을 이끌어 갈 자격이 있다"고 강조했다. CJ, 현대차 등을 거치며 정보통신기술(ICT), 미디어, 모빌리티 분야 경험을 바탕으로 KT의 디지털 전환에 이바지할 것이라는 내용도 담았다. 구현모 대표와 디지코(DIGICO·디지털플랫폼기업) 전략을 추진하며 대박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등 미래 먹거리 발굴에 공을 세운 점에 점수를 준 것.
요즘은 회사나 경영진에 문제가 있으면 주주 스스로 자신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행동에 나선다. 여권에서 벌써 몇 달째 KT 새 대표 인사에 감 놔라 배 놔라 하며 딴지를 거는 것이 자신들이 원하는 사람을 앉히려는 '낙하산 작전'이라면 명백한 시장경제 질서 훼손이다. "정부는 기업 중심의 시장경제라는 정책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는 대통령실의 말이 괜한 소리가 아니라는 걸 보여주려면 더 이상 민간 기업 KT 인사 개입을 멈춰야 한다. 아니면 차라리 '이 사람으로 해라'라고 콕 찍어 주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