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주 52시간제 개편안이 연일 뜨거운 감자다. "주 69시간 일하게 만드는 살인 근무제"라는 비판이 곳곳에서 일자, 대통령이 수습에 나섰을 정도로 혼선을 빚었다. 근무시간 유연화를 국정과제 우선순위에 뒀던 정부 입장에선 치명타를 입었다.
어떠한 포장을 하더라도, 기업에 효율성을 주겠다는 개편안 취지는 바뀌지 않는다. 경영계는 현 주 52시간제로는 업무량 폭증 시 일을 소화할 수 없다며 제도개선을 요구했다. 개편안은 이런 의견을 받아들여 주 52시간에, 추가 연장 근로 12시간, 선택 근로 5시간을 더해 한 주 최대 69시간 근무를 허용하도록 했다. 하루 11시간 30분간, 주 6일을 근무해야 채울 수 있는 업무시간이다. 출퇴근시간, 업무 준비시간, 식사시간 등을 더하면 이 시간은 더욱 급증한다.
개편안의 취약점은 이처럼 사람을 일만 하는 기계처럼 취급했다는 데에 있다. 장시간 근무로 인한 과로로 일상을 누리지 못하도록 설계한 것이다. 아이를 둔 가정에선 단 한 주도 받아들일 수 없는 안이다.
추가로 일한 만큼 몰아서 쉴 수 있어 개편안을 선호할 것이라던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마저 "단 한 주도 근무할 수 없다", "현 근무시간도 많다"며 외면한 것을 보면 2023년 한국 사회에선 환영받지 못할 정책인 것은 분명하다. 지금도 주어진 연차조차 모두 누리지 못하는데, 야근으로 축적한 휴일을 제주도 한 달 살기 등으로 쓴다는 게 가능하겠냐는 것이다. 현재도 야근을 해도 안 한 것으로 취급받고 포괄임금제 등을 통해 공짜 야근을 하고 있다는 불만도 터져 나온다. 이를 방관하는 정부에 대한 불신도 크다.
정부는 최근 현대차 생산직에 왜 많은 지원자가 몰렸는지 살펴봐야 한다. 현대차 사무직도 지원하는 행태를 보면 대기업 직원에 대한 기대심리만은 아닐 것이다. 정확한 근로시간과 이에 대한 충분한 보상, 그리고 정년 보장에 대한 신뢰가 높다는 설명이다.
정부가 개편안 조정에 들어간 만큼, 근로자들을 보호할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 믿음을 줘야 한다. 야근에 동의한 근로자에게 수당을 지급했는지 확인하는 체계와, 이를 어길 시 벌금을 부과하는 이중 점검 구조를 갖추는 식이다. 근로자의 건강권 보호, 제대로 된 보상방안 등을 대대적으로 점검하는 조치도 필수다.
또 기업이 근무체계를 다양하게 설계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하루 4시간만 일하는 반일제 등 부분 근무형태를 만들어 근무자 풀을 넓혀 놓는 것이다. 육아 등으로 인한 조기 퇴사를 줄일 수 있고, 다양한 근무자를 확보할 수 있어 기업들도 업무량에 따라 보다 유연한 대처가 가능하게 된다. 물론 업무에 따라 보상체계를 명확히 한 직무급제 구축이 전제가 돼야 한다.
우리 사회는 한국 전쟁 이후 값싼 장시간 노동력을 바탕으로 재건이 이뤄지다 보니, 아직도 기업 위주의 노동정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경영계에서 "개편안으로 인해 과로사가 증가할 것이라는 주장은 근거가 없다", "노동 생산성이 지금보다는 높아져야 근로시간을 선진국 수준으로 줄일 수 있다" 등의 의견을 지금도 내놓는 이유다. 제발 이번만은 노사 의견이 고루 반영된 종합적인 개편안을 마련해 근로자 삶의 질도 개선되길 기대해 본다.
박관규 산업1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