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이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책방 '한쪽가게'와 함께 운영하는 작은 카페의 이름을 고민할 때 '즐거운 커피가 즐거운 일상을 만듭니다'라는 문장을 떠올렸다. 커피 한 잔을 마시는 짧은 시간이 조금씩 쌓여 손님들의 일상이 즐거워지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일상'의 의미가 궁금해서 사전을 찾아보니 '날마다 반복되는 생활'이다. 날마다 반복되기에 가끔은 지루하고 자주 소중함을 잊어버리는 우리의 매일.
지난해 갑자기 찾아온 질병으로 나의 일상은 예고도 없이 멈췄다. 다음 계절에 만나자는 약속 아닌 약속의 글을 출입문 앞에 붙여 두고 병원으로 향했다. 그렇게 책을 소개하고 커피 한 잔을 건네며 즐거운 일상을 응원하던 책방의 시간도 나와 함께 멈췄다.
그 후 큰 수술과 긴 회복의 시간을 보내며 내가 가장 바라던 일은 별일 없이 '날마다 반복되는 생활'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었다. 매일 아침 졸린 눈을 비비고 일어나 화장실에 가고, 세수하고, 사과 한 알을 여덟 조각으로 잘라 먹으며 출근하는 시간을 그리워하게 될 줄 이전의 나는 알지 못했다.
글을 쓰고 공연을 하며 변호사로 일하는 김원영, 어린이책 편집자로 일했고 지금은 어린이들과 독서 교실에서 함께 책을 읽는 김소영, 영화를 찍으며 코다코리아의 대표로 일하는 이길보라, 동물복지학을 연구하는 수의사이자 곰 보금자리 프로젝트 활동가로 일하는 최태규. '일상의 낱말들'은 네 사람이 서로 다른 자리에서 서로 다른 시각으로 일상에 관하여 사각사각 써 내려간 이야기이다.
책은 한 라디오 방송국의 제안으로 시작되었다. 2주마다 일상에 관한 새로운 낱말이 작가들에게 주어졌고, 그와 관련된 각자의 이야기를 쓰고 녹음해 청취자에게 전하는 프로젝트였다고 한다. 그리고 열여섯 가지 낱말을 네 가지 주제로 정리해 묶었다. 반복되는 리듬(커피, 양말, 밥, 아침), 속삭이는 사물들(텔레비전, 손바닥, 책, 바닥), 움직이는 마음(장난감, 병원, 흔들흔들, 소곤소곤), 고요히 흐르는 시간(게으름, 기다림, 서늘함, 안녕).
"당신의 커피, 양말, 아침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책의 표지에 쓰인 문장에 빙그레 웃음이 나온다. 이 책을 만나는 이들에게 나도 똑같은 질문을 건네고 싶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일상 이야기를 읽는데 자꾸만 나의 일상을 나누고 싶어진다. 당신의 커피 곁에 나의 커피를 나란히 두고 오늘 신은 양말과 어제 읽은 책 그리고 내일의 안녕을 소곤소곤 이야기하면 좋겠다.
김소영 작가님의 '기다림'은 내가 만난 '일상의 낱말들'이다.
"제가 어린이 모르게 어린이를 기다려 주듯이, 어린이들이 저 모르게 저를 기다려 줄 때도 많을 것입니다. 주변 어린이들을 떠올려보세요. 어른들이 바쁜 일을 끝내기를, 지난번 그 약속을 지키기를, 자신을 바라보고 귀 기울여주기를, 말로는 정확히 전달하지 못하는 마음을 알아주기를 기다리고 있지 않나요? 이번에는 누가 기다릴 차례인가요? 헷갈린다면 가위바위보를 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오랜만에 공간을 열던 날 설렘과 걱정으로 발을 동동 구르던 나를 환하게 반겨주던 이들이 있었다. '나도 모르게 나를 기다려 준' 책 친구들이었다(책방에서 만난 이들을 나는 책 친구라 부른다). 책방지기로 늘 손님을 기다린다고 생각했는데 기다림이라는 단어가 나의 일상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우리의 기다림은 순서가 중요하지 않기에 가위바위보가 필요하지 않다는 것도.
겨울이 지나 봄이 오듯 투병이라는 이름의 터널을 통과하며 새 계절을 맞이했다. 기다려 준 이들에게 다음 계절에 만나자는 약속을 지킬 수 있어서 다행이다. 오늘도 작은 공간에서 책을 읽고 소개하는 평범한 하루가 기특하고 소중하다. 온몸과 마음으로 기다렸던 날마다 반복되는 생활, 나의 일상이 봄꽃처럼 반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