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오후 4시, 한 공연장 앞에는 들뜬 모습의 사람들이 가득했다. 연극 '포쉬'를 보고 나온 관객들이었다. 젠더 프리 캐스팅을 시도한 이 작품은 성별이 다른 배우들이 같은 역할을 맡게 했다. 여성 멤버들로 구성된 라이엇 클럽의 이야기를 재밌게 본 이들이 남학생 버전의 공연에 대한 호기심을 갖게 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했다. 관객들의 사랑이 신인 배우들을 향해 쏟아지길 바랐던 김수로의 꿈은 공연의 높은 완성도, 배우들의 열연 등으로 현실이 됐다.
'포쉬'는 최상류층 학생들만 들어갈 수 있는 비밀 사교 모임 라이엇 클럽 구성원들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돈까지 많은 명문대학교 학생들이지만 이들의 내면은 우아함, 혹은 고상함과 거리가 멀다. 교외의 불스헤드 펍에 모여 만찬회를 즐기던 멤버들은 손님들에게 피해를 줄 정도로 시끄럽게 떠들고 거리낌 없이 이성에게 성희롱을 한다. 펍 주인의 조용히 해달라는 등의 요구는 라이엇 클럽 멤버들을 분노하게 만들고 이는 중산층 계급 전체에 대한 분노로 이어진다. 극에 흐르는 긴장감이 극에 달하는 지점이다.
주목할 점은 배우 김수로가 이 작품의 총괄 프로듀서로 나섰다는 부분이다. 오랜 시간 연극과 함께해왔던 그의 진가는 '포쉬'를 통해 다시 한번 빛을 발했다. 앞서 김수로는 '블랙메리포핀스' '머더 발라드' 등의 프로듀서로 활약하며 사랑받았는데 '포쉬' 또한 높은 완성도로 관객들에게 극찬을 이끌어냈다. 우월감에 빠져 있는 상류층에 대한 과감한 풍자는 보는 이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남긴다. 극 초반부 들려오는 김수로의 목소리는 반가움을 더하는 요소다. 목소리 연기로만 관객들을 만나지만 존재감은 결코 작지 않다.
젠더 프리 캐스팅은 '포쉬'의 가장 큰 매력 중 하나다. 남녀 배우들이 한 역할에 함께 캐스팅된 만큼 버전에 따라 다른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포쉬' 속 여학생들이 그간의 연극 무대에서 그려졌던 대부분의 여성들과 크게 다르다는 점도 시선을 모은다. 라이엇 클럽 여학생들은 치마가 아닌 바지를 입고 등장한다. 힘 있는 목소리 또한 이목을 집중시킨다.
라이엇 클럽 멤버는 모두 10명인데 이들 외에도 펍 주인, 펍 주인의 아들 혹은 딸, 그리고 찰리가 등장한다. 10명 이상의 배우들이 한 무대에 올라 있는 순간이 많지만 어수선함은 없다. 이들은 대사를 각자의 색깔대로 잘 소화해 내는 것은 물론 노래와 간단한 춤까지 선보인다. 치열한 오디션을 거쳐 합류한 신예들도 부족함 없이 맡은 역할을 제대로 해냈다.
총괄 프로듀서 김수로는 공연을 앞두고 자신의 SNS를 통해 "우리 신인 배우들, 늘 찾아 주시는 분들께 큰 사랑 받길 원한다. 그래서 보다 많은 작품으로 나아가길 바란다"고 말한 바 있다. 지난 11일에는 남자 배우 팀의 모습을 담은 사진, 영상과 함께 "멋졌다. 13명의 배우들, 많은 사랑 받길"이라는 글을 게재했다. '신인 배우들을 향한 사랑'이라는 김수로의 첫 번째 희망 사항은 '포쉬' 공연을 거듭해가며 현실이 됐다. 관객들의 응원은 또 다른 꿈 또한 이뤄질 가능성을 높이는 중이다.
지난 9일 개막한 김수로의 새 연극은 앞으로도 관객들의 봄을 의미 있게 채워나갈 예정이다. 다양한 매력과 배우들의 열연으로 무장한 '포쉬'는 오는 5월 21일까지 예스24스테이지 3관에서 공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