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16일 정상회담을 통해 '안보대화와 차관급 전략대화를 재개한다'고 합의했다. 차관급 전략대화는 우리가 중국과도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고위급 협의체다. 전례 없이 중일 양국을 상대로 전략대화를 동시에 가동하는 셈이다.
하지만 정상이 만나 손을 맞잡고 한껏 스킨십을 넓힌 일본과 달리 중국은 2014년 7월 이후 중단된 시진핑 주석 방한에 소극적이어서 기류에 차이가 있다. 차기 주최국으로서 2019년 12월 이후 개점휴업 상태인 한중일 정상회의에 불을 지피려는 정부가 기회와 고민을 동시에 떠안은 모양새다.
정상회담은 단연 외교 이벤트의 정점으로 꼽힌다. 국장급→차관급→장관급 협의를 거쳐 정상이 만나는 방식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윤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는 정상 셔틀외교를 복원하기로 의기투합했다. 정상이 서로 상대국을 오가는 마당에 그보다 급이 낮은 차관급 대화를 거리낄 이유가 없다.
반면 중국과는 상황이 다르다. 외교부의 올해 주요 업무 추진계획에 따르면 '지난해 불발된 차관급 전략대화 재추진과 정례화'가 목표에 포함돼 있다. 박진 외교부 장관 방중을 포함해 양국 외교채널 협의를 통해 전략대화의 필요성을 입버릇처럼 강조했지만 언제 열릴지 기약하지 못하고 있다. 코로나19가 한창이던 2021년 화상회의로 서먹하게 진행한 게 전부다.
한미일 안보협력을 강조해온 윤석열 정부가 일본을 지렛대로 중국과의 고위급 소통을 견인할지 주목되는 대목이다. 친강 중국 외교부장은 앞서 7일 연례 최대 정치행사인 양회 기자회견에서 이례적으로 한반도 문제를 거론하지 않았다.
김흥규 아주대 미중정책연구소장은 17일 "현재 중국은 미국에 쏠리는 한국에 대한 우려가 큰 상황"이라며 "이를 관리하기 위해서라도 한국과의 대화에 응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일에 이어 4월 한미정상회담이 예정된 만큼 상황을 더 지켜보고 우리 정부와 거리를 좁히려 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전직 외교관은 "한일관계 개선을 계기로 한중일 정상회의를 연내 개최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 만큼 상호 이익과 필요에 따라 중국과의 고위급 소통도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당장 중국은 한일정상회담 결과를 경계하는 눈초리다.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윤 대통령의 방일로 강제동원 문제가 타결되더라도 한일관계 개선은 어렵고 양국의 적개심만 더 강해질 수 있다"고 전했다. 강준영 한국외대 교수는 "중국은 한미정상회담 결과까지 보고 한국과 관계설정을 하려 들 것"이라며 "우리 정부 또한 기준점을 잡고 관리 가능한 협력 분야에서 중국과의 소통을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