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의 수사 책임자였던 이인규 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이 곧 출간될 회고록(나는 대한민국 검사였다-누가 노무현을 죽였나)을 통해 무차별적인 수사내용 폭로에 나섰다. 본인은 “진실 알리기”라고 주장하나, 검사 출신이 자신이 담당했던 피의자 조사 내역을 이런 식으로 공표하는 것은 전례가 없으며 매우 부적절하다.
이 전 부장은 노 전 대통령이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에게서 받았던 것으로 알려진 금품의 액수와 성격, 고급 손목시계 수수에 대한 노 전 대통령의 발언까지 공개했다. “(뇌물 수수) 사실에는 다툼이 없다” “노 전 대통령이 공모한 범죄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고 단정했다.
노 전 대통령의 혐의는 수사 당시 일정 부분 확인되었다는 것이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이미 피의자가 사망한 마당에, 책임 검사가 법정이 아닌 곳에서 세상에 떠벌리듯 하는 것은 지극히 무책임하고 황당한 짓이다. 이 전 부장은 회고록 발간 이유에 대해 “국민에게 노 전 대통령 수사의 진실을 알려야 할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러나 사법부에서 판단을 받은 적도 없고, 피의자가 사망해 방어권도 보장되지 않은 상황에서의 일방적 폭로는 사자 명예훼손에 해당할 소지가 짙다.
노 전 대통령 사망 배경에는 검찰의 과도한 피의 사실 공표와 망신 주기가 있었다. 이 전 부장의 이번 폭로는 사실상 그 연장선에 있다.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노 전 대통령을 억울한 죽음으로 몰고 간 정치검사가 검사정권의 뒷배를 믿고 날뛰는 행동”이라고 비판했다.
검사는 ‘공익의 대표자’이다. 그런데 공익의 대리인이라는 자격이 무색하게, 지켜야 할 선을 지키지 않고 넘나드니 ‘검찰공화국’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것이다. 검찰은 정치권 수사에서 공정성을 잃고, 대장동 ‘50억 클럽’에는 검찰 간부 출신들이 줄줄이 이름을 올렸다. 여기에 더해 전직 중수부장이 ‘나는 대한민국 검사였다’고 내걸고 피의사실 공표에 나서다니, 한국 검찰권이 얼마나 망가지고 있는지 검찰 출신들만 모르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