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의 권리구제 과정을 돌아보면 ‘국가’는 보이지 않는다. 보수·진보 정부가 다르지 않았다.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부터가 그랬다. 박정희 정권은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인정받지 못한 채 일본에서 무상 3억 달러, 차관 2억 달러를 받고 전후 보상문제를 마무리 지었다. 그 돈이 경제 발전의 종잣돈이 됐다. 하지만 강제징용 피해자에게 지급된 보상금이 3억 달러의 10%도 안 되는 수준이었다는 건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이마저도 사망자 유족에게만 1인당 30만 원씩 보상금을 준 게 전부다.
피해 보상이 미흡하자 강제동원 피해자들은 1990년대 일본에 가서 소송을 냈지만, 모두 패소했다. 보다 못한 노무현 정부가 두 가지 조치를 취했다. 먼저 2005년 민간공동위원회를 꾸려 “청구권협정은 일본의 식민지배 배상을 청구하기 위한 협상이 아니었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국가가 해준 건 엄밀히 말해 ‘당신들 소송에 근거가 있다’는 일종의 확인서 발급에 불과했다.
그다음 2007년 희생자지원법을 제정해 추가 보상을 했다. 사망자나 행방불명자에게 1인당 2,000만 원의 위로금, 생존자에게는 1인당 매년 50만 원의 의료지원금을 지원하는 내용이었다. 진일보한 조치지만 미흡한 건 마찬가지였다. 당시 국회는 보상 수준이 적다며 생존자에게 500만 원의 위로금을 추가 지원하는 수정안을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했다. 재정 부담(2,000억 원)을 이유로 들었다. 2018년 대법원 확정판결로 승소한 피해자들도 당시 거부권 행사가 없었으면 수혜 대상이 됐을 사람들이다.
‘건국하는 심정으로’ 내렸다던 대법원 판결은 '지연된 정의'의 회복이라는 선의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하지만 이 역시 외교문제에 대한 사법자제라는 관례를 벗어나면서 문제를 꼬이게 만들었다. 문재인 정부도 예외는 아니었다. 국제조약과 국내판결이 충돌하는 사이 책임회피적 태도를 보였다. 그러는 사이 권리구제는 오로지 피해자 개인의 몫이었다. 국권을 뺏기면서 발생한 피해였지만 국가는 한 발 빠져 있었다.
윤석열 정부가 일본 전범기업 대신 우리 기업이 배상금을 변제하는 강제징용 해법을 내놓았다. 물론 부족한 대목이 많다. 끝내 사과하지 않은 일본의 태도도 실망스럽다. 하지만 북핵 위기와 미중 대립이라는 복합위기에 맞서 한미일 공조가 필요한 것도 엄연한 현실이다. ‘노 재팬’ 불매운동이 일었던 4년 전에 비해 지정학적 환경은 딴판으로 변했다.
“영원한 동맹도 없고 영원한 적도 없다. 우리의 국익이 영원할 뿐이고 그 국익을 따르는 것이 우리의 의무다.” 영국에서 위대한 외무장관 중 한 명으로 꼽히는 헨리 존 템플 총리가 남긴 이 말은 국가의 역할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힘없는 국가는 국민을 지키지 못한다. 우리가 그랬다. 우리에게 국익 중심 외교는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다.
공교롭게 강제징용 문제는 피해자의 존엄성 회복과 국익 중심 외교가 길항하는 지점이다. 딜레마 같은 상황에서 윤 대통령이 결단을 내렸다. 누적된 국가의 실패 속에 누군가는 매듭을 지어야 한다고 봤을 것이다. 정상회담으로 어쨌든 한일관계의 물꼬는 텄다. 해묵은 친일 논쟁으로 우리끼리 싸우는 건 득이 될 게 없다. 과거사를 미래의 문제로 전환해 해법을 만드는 경륜과 지혜가 필요하다. 윤석열 정부도 일본에 '대승적 양보'를 한 만큼 국민이 납득할 만한 국익의 신장을 보여줘야 한다. 국민은 뿌리 깊은 반일감정을 잠시 누르고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