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연차 게이트'로 촉발된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 책임자였던 이인규 전 대검 중수부장이 "노 전 대통령 혐의 중 상당 부분은 다툼이 없었다"는 주장이 담긴 회고록을 내놨다.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한 지 14년 만이다.
이 전 부장은 24일 회고록 '나는 대한민국 검사였다-누가 노무현을 죽였나'(조갑제닷컴)를 출간할 예정이다. 532쪽 분량의 회고록에는 이 전 부장이 수사 책임자였던 노 전 대통령 사건에 대한 입장과 판단, 당시 상황이 상세히 담겼다.
노 전 대통령은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의 정·관계 불법 로비 사건에 연루되면서 2009년 4월 30일 검찰 조사를 받았다. 노 전 대통령은 그해 5월 23일 봉하마을 사저 뒤 부엉이바위에서 투신했다. 검찰 수사는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됐고, 이 전 부장은 같은 해 7월 14일 검찰을 떠났다.
이 전 부장은 회고록에서 당시 노 전 대통령 사건을 '가족 비리'라고 표현했다. 특히 논란이 됐던 '논두렁 시계'와 관련해 "권양숙 여사가 박 전 회장으로부터 시가 2억550만 원 상당 피아제 남녀 시계 세트 2개를 받은 사실에는 다툼이 없었다"며 "시계는 2006년 9월쯤 재임 중이던 노 전 대통령에게 뇌물로 전달됐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주장했다. 노 전 대통령이 중수부에서 조사를 받던 날 이 전 부장에게 사전 질문지에 포함돼 있지 않던 시계 수수와 관련해 "이 부장! 시계는 뺍시다. 쪽팔리잖아"라고 말해 당황했다고도 회상했다.
이 전 부장은 박 전 회장 진술 등 증거를 종합할 때, 노 전 대통령이 권 여사와 공모해 아들 건호씨의 미국 주택 구입 자금 명목으로 총 140만 달러를 수수한 것으로 보는 것이 상당하다고 밝혔다. 그는 "권 여사가 2007년 6월 29일 청와대에서 정상문 전 총무비서관을 통해 박 전 회장으로부터 100만 달러를 수수하고, 같은 해 9월 22일 추가로 40만 달러를 받은 사실은 인정된다"고 했다.
이 전 부장은 "2008년 2월 22일 노 전 대통령 재임 때 아들 건호씨, 조카사위 연철호씨가 박 전 회장으로부터 500만 달러를 받았고 이를 사용했다는 것에도 다툼이 없다"고 주장했다. 당시 중수부는 이 돈을 박 전 회장이 노 전 대통령에게 주기로 약속했던 환경재단 출연금으로 치고, 건호씨 등의 사업자금 명목으로 준 뇌물로 보는 게 상당하다는 판단을 내렸다고 했다.
노 전 대통령이 퇴임 직후인 2008년 3월 20일 박 전 회장으로부터 '이자 연 7%, 변제기한 2009년 3월 19일'로 15억 원을 빌렸으나 이를 변제하지 못한 사실에도 다툼은 없었다고 전했다. 다만 차용증을 작성한 점에서 범죄는 아니라고 봤다.
이 전 부장은 정 전 비서관이 박 전 회장으로부터 2006년 8월쯤 현금 3억 원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것과 관련해, 노 전 대통령의 관여 증거는 찾지 못했다고 했다. 정 전 비서관은 2004년 11월~2007년 7월 대통령 특수활동비 12억5,000만 원을 횡령한 국고손실 혐의로 기소돼 유죄 확정 판결을 받았다. 이 전 부장은 "(이는) 노 전 대통령이 공모한 범죄로 보는 게 합리적"이라고 했다.
이 전 부장은 결국 "검찰은 노 전 대통령을 기소해 유죄를 받아낼 수 있는 충분한 물적 증거를 확보했다"고 주장했다.
이 전 부장은 당시 노 전 대통령 변호인이던 문재인 전 대통령을 향해 "수사기록을 읽어본 적도 없는 문 변호사가 무슨 근거로 '검찰이 아무 증거가 없다'는 주장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거짓의 제단을 쌓아 대통령이 된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 전 부장은 "형사사건 변호인은 수사검사를 방문해 내용을 파악하고 대처 방법 등 변호 전략을 수립하는 것이 기본이나, 문 변호사는 나는 물론 수사팀 누구도 찾아오거나 연락을 해온 적이 없고 언론에 검찰 수사에 대한 비난만 했다"고 지적했다. 또 "노 전 대통령에게 유리한 사실을 주장하고 수사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의견서 한 장 제출한 적 없다"며 "도대체 노 전 대통령의 변호인으로서 무엇을 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 전 부장은 "문 변호사는 노 전 대통령이 극단적 선택을 하기 전 일주일 동안 그의 곁을 지키지 않았다"며 "(문 전 대통령은)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동지요 친구인 노무현의 안타까운 죽음을 이용하고 있는 것"이라고 질타했다.
이 전 부장은 '논두렁 시계' 보도로 검찰의 피의사실 공표 논란이 불거진 것에 대한 상황도 설명했다. "박 전 회장이 노 전 대통령에게 고급 시계를 선물, 노 전 대통령이 그 시계를 '밖에 버렸다'고 한 건 사실이지만, 검찰 수사 기록 어디에도 '논두렁 시계'라는 표현은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최초 (언론) 보도에서 처음 나온 말로, 그 배후에 국가정보원과 이명박 청와대가 있을 개연성이 매우 크다"고 추정했다.
이 전 부장은 회고록 발간 이유에 대해 "지난 2월 21일 노 전 대통령 사건에 대한 공소시효도 모두 완성됐다. 이제는 국민에게 노 전 대통령 수사의 진실을 알려야 할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고 적었다.
노무현재단 측은 "내용 검토 후 입장을 밝힐 예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