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는 16도 이하 소주"...'새로+진로토닉' 꿀조합까지 유행시킨 MZ세대 [한국 소주 100년]

입력
2023.03.25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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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가 새로·진로제로슈거가 '점령'
"쓴맛 없고 당도 없어" 건강 위해 선택 
건강 챙기며 마시자...'헬시플레저' 열풍 덕


"먹는다고 살 빠지는 건 아니지만 칼로리가 조금이라도 낮으면 그걸 택해야죠."(김재나·23) "취하려고 술 마시면서 괴로워하기보다 맛있게 마시면서 술자리를 즐기고 싶어서요." (박상희·24)


최근 서울 종로구의 대학가 상권에서 만난 10여 명의 20대는 저도수·무가당 소주만 찾는다며 그 이유를 묻는 기자에게 이같이 답했다. 저도수라 맛이 부드럽고 몸에 부담을 덜 줄 것이라는 생각에 '처음처럼 새로(16도·롯데칠성음료)'나 '진로이즈백 제로슈거(16도·하이트진로)'를 즐겨 마신다는 것. 소주 하면 자연스레 떠올리던 '참이슬'(16.5도), '처음처럼'(16.5도)은 거리를 두게 됐다고 이들은 입을 모았다.



곳곳 적시는 '저도수' 소주…"서울 넘어 부산까지"


1924년 한국식 소주가 탄생한 지 약 100년, 한때는 35도의 쓴맛으로 이맛살 찌푸리며 마시던 소주가 한없이 순해지고 있다. 16도에 무가당인 새로와 진로에 이어 2일 국내 최저 도수(14.9도), 최저 칼로리(298㎉) '선양소주'까지 등장하면서 도수 낮은 소주끼리 경쟁의 열기가 어느 때보다 뜨겁다.

저도수·무가당 트렌드를 이끈 주역은 단연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다. 주류업계 한 관계자는 "음식점을 제외한 대형마트 등 유통 채널의 판매 비중만 봐도 20, 30대 비중이 압도적"이라며 "서울·수도권뿐 아니라 부산 등 지방까지 MZ세대를 중심으로 저도수·무가당 소주가 유행 중"이라고 달라진 음주 분위기를 전했다.

이들 사이에서는 롯데칠성음료의 저도수 소주 '새로'와 하이트진로의 탄산수 '진로토닉 제로'(진로토닉)를 섞어 먹는, '새로토닉' 레시피도 인기를 끌고 있다. 새로와 진로토닉을 1대 1, 1대 2 비율로 섞으면 달콤하면서도 당 없이 술을 즐길 수 있다는 꿀팁이다. 진로토닉은 홍차, 진저 등 종류도 다양해 어떤 제품을 이용하느냐에 따라 맛의 변주도 가능하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여러 저도수 소주의 맛과 도수, 칼로리를 분석한 게시물도 많이 볼 수 있다.




저도수 소주의 인기는 술집 판매 추이만 봐도 체감할 수 있다. 서울 종로구에서 술집을 운영하는 A씨는 "새로는 출시 첫 달인 지난해 12월 300병 팔리던 게 지난달(2월) 530병까지 올라왔다"며 "지난달 참이슬이 680병 팔렸는데 새로가 곧 따라잡을 기세"라고 전했다. 또 다른 술집 사장 B씨는 "새로와 진로를 합치면 저도수 소주 판매 비율이 70%까지 올라왔다"며 "나이 지긋한 손님은 여전히 높은 도수를 찾지만 20대는 이제 무가당이 아니면 안 마실 정도"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새로는 지난해 10월 출시 한 달 만에 680만 병이 팔리더니, 올해 들어 누적 판매량이 5,000만 병을 돌파했다. 이 속도라면 올 상반기 내 판매량이 1억 병을 돌파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그런가 하면 저도수 열풍은 주류업체의 매출 구도도 바꾸고 있다. 하이트진로는 지난해 역대 최고 실적을 기록한 비결로 저도수 마케팅 전략을 꼽았다. 회사 관계자는 "저도수·혼합주 문화가 확산함에 따라 소주와 섞어 마시는 진로토닉의 라인업을 확대했다"며 "외식업소에서도 해당 제품을 입고하면서 매출이 올랐다"고 설명했다. 하이트진로는 지난해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116% 증가한 123억 원으로 나타났고 매출은 26% 신장했다.



저도수 왜 찾나?…과음 문화 사라져


이처럼 저도수 소주가 각광받는 이유는 독한 술을 피하는 MZ세대의 성향 때문이다. 과거 소주는 많이 마시고 취하는 게 미덕처럼 여겨졌지만, 지금은 향과 맛을 음미하고 분위기를 즐기는 기호식품으로 바뀌면서 순한 술을 찾게 됐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여기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이후 즐겁게 건강 관리를 하자는 '헬시플레저' 열풍까지 맞물리면서 무가당인 저도수 소주가 더 인기를 끌게 됐다. 올해부터 소주병에 칼로리를 표기하는 주류 열량 자율표시제가 시행돼 주류업체가 소주 칼로리에도 각별히 신경 쓰게 됐다는 해석도 있다.

한편에서는 위스키나 수입 주류, 원소주와 같은 증류식 소주 등 도수 높은 술 종류가 많아지면서 희석식 소주가 독한 술 영역에서 과거 같은 압도적 인기를 유지하기 어려워졌다는 해석도 나온다. 이영애 인천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과거보다 주류에 대한 선택지가 다양해졌을뿐더러 '도수 높은 술'이라는 이미지만으로는 희석식 소주가 품질 높은 증류식 소주를 따라잡기 어렵다"며 "특히 20대까지 저변을 넓히기 위해 저도수로 차별화에 나선 것"이라고 말했다.



저도수는 원가 낮아지는데…가격 왜 오르기만 할까


그러나 소주 도수가 낮아질수록 불편한 시선도 공존한다. 도수가 낮아지면 주정 함량이 줄어 제조 원가가 낮아질 텐데, 왜 소줏값은 오르기만 하냐는 의문이다. 업계에 따르면 소주 도수가 0.1% 내려가면 1병당 주정 값이 0.6원가량 절감된다.

업계 관계자들은 주정 함량이 줄었어도 가격을 내릴 만한 요인은 많지 않다고 강조한다. 주정 등 원자재와 술병·병뚜껑 등 부원자재, 물류비, 가스비, 인건비 등 각종 제조 비용에 주세까지 올랐기 때문이다.

소주의 출고가는 제조 비용 550~600원에 72%의 주세와 주세의 30%인 교육세가 붙어 결정되고, 이후 10% 부가가치세가 추가돼 시중에 팔린다. 계산하면 실제 출고가는 1,100~1,200원대다. 이를 도매상이 20~30% 마진을 붙여 1,300~1,500원 수준에 외식업소에 공급한다. 결국 소비자가 음식점에서 보는 6,000원 가격표는 4,000원 이상 소상공인의 마진이 반영된 셈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최저 임금에 에너지 비용 등 각종 공과금 인상으로 소상공인의 부담이 커진 것도 사실"이라면서도 "주류업체가 가격을 올리지도 않았는데 물가 인상의 주범처럼 비칠 때는 씁쓸한 생각도 든다"고 토로했다.

이소라 기자
양윤선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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