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을 닮은 기계지능, 즉 인공지능(AI·Artificial Intelligence)의 시대가 도래한 듯하다. 챗GPT 이야기가 일상을 점령하고 전장(戰場) 역시 인공지능 이슈로 뒤덮이고 있다. 미국을 비롯한 대부분의 나라들이 AI 무기 개발에 매달리고 있는 형국이고, 우크라이나 전장은 이미 몇몇 AI 무기들의 시험장이 되어가고 있다.
인공지능이 우리 삶 속으로 들어온 사건으로 2016년 이세돌 기사와 AI기사 알파고의 대국을 꼽을 수 있다. 알파고만큼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AI의 군사적 적용의 가능성이 본격적으로 알려진 계기는 2020년 8월의 알파 도그파이트(α Dogfight) 챌린지 결승전 온라인 생중계였다.
알파 도그파이트란 수많은 바둑기보를 익힌 알파고와 같이, 전투기들의 근접공중전(dogfight) 데이터를 학습시켜 개발한 기동전 AI 알고리즘이다. AI 조종사와 실제 인간 조종사 간의 시뮬레이터 가상 기동비행 대결이었다. 미 공군이 기동 AI 알고리즘을 뽑는 해커톤 방식으로 진행한 챌린지에는 보잉, 록히드마틴 등 거대 방산기업뿐 아니라 피지컬AI 등 민간기업도 참여했다. F-16 탑건 인간 조종사(콜사인이 뱅어)를 5:0으로 완패시킨 최종 승자는 AI 벤처소기업 헤론시스템이 개발한 AI 파일럿이었다. 이세돌이 AI 기사에 패한 최초의 인간이었듯 이 때의 전투조종사는 AI 조종사에 패한 최초의 인간 조종사로 기록됐다.
알파 도그파이트는 여기에 멈추지 않고, 인공지능뿐 아니라 자율기술을 적용하여 무기를 개발하고 전투 방식을 진화시키고 있다. 전투기에 AI 파일럿이 탑재되어 인간 조종사의 보조임무를 수행하는 방식에서 더 나아가 종국에는 완전한 무인전투기 편대가 실전에 투입될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이다. ‘로열 윙맨’으로 불리는 AI 자율드론 개발 프로젝트가 대표적이다. 생존성과 전투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유인전투기에 AI 자율드론들을 네트워크로 함께 묶어 협업 방식으로 적에 대한 정보를 탐지하고 타격까지 수행하는 AI 유무인복합체계(MUMTi, Manned-Unmanned Teaming)가 거의 완성 단계다. 2040년쯤에는 인간 전투원은 지상에서 전장 상황을 감독하고 지휘하는 역할에 머물고, 공중과 우주 공간에서는 자율드론과 무인전투기 편대만이 기계 간의 실제 전투를 치르는 미래전 시나리오가 실현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AI는 전투기나 공중 드론에만 적용되지 않는다. 미 해군은 무인 자율주행 전함인 ‘See Hunter’로 유령함대를 만들고 있다. 이 유령함대에서 통제하는 AI 드론과 무인수상함과 무인잠수정 등은 멀리 떨어진 항모전투단과 실시간 연결되어 정보를 주고받으며 초정밀타격임무 수행을 도와주는 방대한 유무인복합체계로 팀을 이루어 전쟁을 수행하게 된다. 지상에서도 무인차량과 로봇이 초기의 단순한 원격작동과 자동방식이 아니라 AI기반의 자율무기가 되고 있다. 미 육군의 자율로봇무인전투차량(Robot Combat Vehicle)은 스스로 환경을 탐색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기동에 최적화된 경로를 이동하면서도 임무수행을 해낸다.
AI는 전장에서 지휘관의 결심과 판단을 보조하는 참모 역할도 모색하고 있다. 미 육군은 시가전에 필요한 소부대용 AI 전투 참모 개발을 완성해가고 있다. 아군이 깔아놓은 다양한 센서 정보뿐 아니라 전투수행에 필요한 6대 기능, 즉 지휘통제와 기동, 화력, 방호, 지속지원에 대한 정보를 실시간으로 통합하여 분석한 결과를 지휘관이나 전투원들에게 제공하여 즉각 지휘결심을 돕는 방식이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에도 이미 AI 무기가 투입됐다.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휴대폰으로 러시아군을 촬영한 사진을 SNS 공개정보로 군에 전송했는데 사진뿐 아니라 동영상, 소리(감청), 전파 등 다양한 종류의 정보들을 통합 분석하기 어려웠다. 우크라이나 IT전문가들은 다양한 SNS 정보를 하나로 묶는 ‘통합 SNS플랫폼’을 개발하였고, 실제 지형과 공개 정보들을 비교하여 러시아군의 위치를 파악하는 ‘Media Monitoring Bot’을 ‘통합SNS플랫폼’에 덧입힐 수 있었다. 이를 통해 우크라이나군은 러시아군의 규모와 위치를 실시간으로 분석하고, 러시아군의 지휘관들을 선별적으로 타격하고 있다. 이처럼 우크라이나군은 AI 기술을 적용하여 러시아군의 행동을 예측하고 대응함으로써 어려운 가운데에서도 잘 싸우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우리나라도 AI 기술을 적용하는 다양한 노력을 시작하였다. 저출산 고령화로 병력 급감 현상이 현실화하면서 육군은 시범부대를 지정하여 'ArmyTIGER' 체계를 구성하는 무인체계 도입을 획기적으로 늘리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유인체계와의 협업 능력을 강화하기 위한 다양한 전투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공군도 비행 임무와 비행기지 운용 전반에 AI를 결합한 스마트비행단 사업을 추진하는 동시에 미래전을 대비한 AI 기반 유무인 전투비행체계 킬웹(Kill-Web)을 연구 중이다. 해군 또한 AI기반의 스마트십과 스마트 함단 구축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동시에 국방부는 첨단무기에 AI 기술을 적용하기 위해 민간 산학연구소의 인재와 역량을 적극적으로 군에 도입하기 위한 다양한 제도적 개선에 힘쓰고 있는 중이다. 이를 바탕으로 우리 군은 소수 병력으로 슬림화되면서도 AI로 지능화된 전투여단의 수를 단계적으로 확대시켜 나갈 목표를 설정하고 있다.
군사기술 혁신이 만들어낸 게임체인저 무기들은 과거에도 있었다. 그러나 AI 무기는 과거의 그 어떤 게임체인저 무기보다도 인류에게 도전이 되고 있다. 주된 이유는 AI를 비롯한 ICT기술의 특성에 기인한다. 지금까지 군사 기술의 발전 양상은 미국 등 강대국들이 최고 사양의 군사기술을 앞서 개발한 뒤 민간에 이전(Spin-off)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반면 AI 기술은 민간에서 앞서 개발되고 군사 분야에는 뒤늦게 도입(Spin-on)되는 경향이 크다. 미국이나 강대국들이 군사기술을 뜻대로 통제하고 선점하기에 버거워졌고, 테러조직이나 중국과 같은 권위주의 국가는 과거에 비해 AI 군사기술을 활용하기가 훨씬 수월해진 셈이다.
이런 이유로 AI 기술의 군사적 활용과 확산에 대한 국제사회 우려와 근심이 커지고 있다. 유엔이나 비정부기구(NGO)에서 국제적 협의나 국제법 제정의 필요성에 대한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지난 2월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REAIM(Responsible AI in the Military Domain Summit) 2023’에서 「인공지능의 책임 있는 군사적 이용에 관한 고위급회의」가 대표 사례다. 이 회의는 군사적 AI 윤리 이슈에서의 첫 가시적 성과로 평가받고 있다.
앞으로 국제사회에서는 AI 기술의 군사적 활용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만들어질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국제정치는 자국의 이익에 부합하는 현실주의에 입각한다. 따라서 국제사회가 어디까지 AI를 무기로 사용할지, 과연 인간을 보조하는 AI 무기로 그칠 수 있을지, 적들이 인간을 살상하는 AI 무기로 무장했을 때 자국은 과연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등 인류사적 고민이 본격화할 것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지혜를 함께 모아야 할 절실한 시점이다.
박영욱 (사)한국국방기술학회 이사장
서울대 지구과학교육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서양과학기술사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국회 국방위원회 보좌관으로 국방 분야에 입문하여 방위사업청과 방산기업, KAIST 등에서 연구했다. 우석대와 명지대 객원교수로 근무하며 (사)한국국방기술학회 이사장을 맡고 있으며 국가과학기술심의회, 육군, 감사원 등에 자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