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은행(SVB)이 삽시간에 파산한 배경으로 스마트폰이 지목되면서, 모바일 서비스가 일상화한 한국도 이른바 '폰 뱅크런(대량 예금 인출)' 취약지대가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국내 시중은행은 "뱅크런 발생 가능성 자체가 낮다"고 일축하면서도 신용 위기가 번질까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SVB가 무너진 건 8일(현지시간) 부실이 알려진 이후 36시간 만이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나도 인출했다'는 메시지가 오가면서 공포가 빠르게 확산했다"고 진단했다. 모바일 뱅킹 덕분에 돈을 인출하는데도 고작 몇 번의 터치만 필요했다. WSJ는 이를 "실리콘밸리가 만든 체계에 실리콘밸리가 당했다"고 묘사했다.
한국도 대비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것은, 모바일뱅킹을 포함한 인터넷뱅킹이 이미 보편화했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이 7일 발표한 '국내 은행 인터넷뱅킹 서비스 이용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입·출금 및 자금이체 거래의 77.7%가 인터넷뱅킹 이용 거래였다. 하루 평균 모바일뱅킹 이용 건수와 금액은 전년 대비 17.3%, 10.3%씩 증가해 높은 신장세를 보였다. 개인 고객의 경우 모바일뱅킹으로 한 번에 최대 1억 원씩, 하루에 총 5억 원을 인출할 수 있다.
시중은행은 그러나 SVB와 상황이 달라 뱅크런이 발생할 가능성은 낮다는 입장이다. SVB의 고객 대다수는 거액을 예치한 실리콘밸리 기업인 데 비해, 국내 은행은 몇백만 원 수준의 소액을 예치한 다수의 개인으로 구성돼 차이가 있다는 설명이다. 금융감독원도 13일 '금융상황 점검회의'에서 "국내 금융회사는 일시적 충격에 견딜 수 있는 것으로 판단한다"며 특히 모바일뱅킹 위주의 인터넷전문은행의 경우 "1인당 평균 예금액이 200만 원대로 예금자보호한도(5,000만 원) 범위 내의 매우 낮은 수준"이라고 밝혔다.
다만 글로벌 투자은행(IB) 크레디트스위스(CS)도 유동성 위기에 직면했고 공포심은 쉽게 전염되는 만큼 은행들은 경계심을 갖고 내부 점검을 강화하고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자금 쏠림은 없는지, 전반적인 포트폴리오가 어떻게 구성돼 있는지, 혹시나 급격한 자금 출금이 발생할 경우 대응 가능한지 등 여러 지표들을 살펴보고 있다"고 전했다. 다른 은행 관계자는 "모니터링을 강화했지만 아직 위기 징조는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