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술은 술다워야'…'14.9도' 선양소주, 도수 낮추고도 술맛은 어떻게 살렸나 [한국 소주 100년]

입력
2023.03.25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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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도 무가당 소주 선양 대전 공장 가보니
쌀·보리 증류원액 블렌딩…풍미 높여 
소주에 산소 주입…부드러운 맛 살려


"이렇게까지 낮춘다고?"


충청권 주류업체 맥키스컴퍼니가 14.9도짜리 무가당 선양소주를 만든다는 소식을 접한 주류업체 관계자들은 화들짝 놀랐다. 16도의 경계를 넘어 14도대까지 도수가 내려간 건 희석식 소주가 판매된 이래 처음이기 때문이다. 선양소주는 저도수 유행에 맞춰 0.5도씩 도수를 내리던 업계의 불문율마저 깼다. 2일 대전 유성구 신세계백화점 팝업스토어에서 만난 고봉훈 맥키스컴퍼니 마케팅 팀장은 "저도수·무가당 소주가 쏟아지는 상황에서 소비자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려면 소주의 정체성을 지키면서도 그동안 볼 수 없었던 과감한 시도를 해야 했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선양소주 첫 출고날…'1분에 700병' 생산에 박차



이날은 14.9도 선양소주가 공장에서 첫 출고돼 소비자와 만나는 날이었다. 오후 2시 대전 서구 맥키스컴퍼니 공장의 희석동에서는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병에 소주를 붓고 마개를 닫는 타전 공정이 한창이었다. 공병 선별 후 세척, 공병 검사, 소주 주입, 타전(마개닫기), 제품 검사, 라벨 부착까지의 공정은 기존 제품인 '이제 우린'과 큰 차이가 없다. 다만 새 제품은 병 목 부분을 짧게 만들고 병마개도 맥주병 같은 크라운 캡을 사용했기 때문에 크라운 캡핑이 가능한 설비까지 새로 들였다.

숙성 공정을 거쳐 최소 3개월 이상이 필요한 증류식 소주와 달리 희석식 소주인 선양소주는 주정을 희석하고 간단한 정제 과정을 거친 뒤 첨가물을 배합하면 하루 안에 만들 수 있다. 회사 관계자는 "선양소주는 1분에 700병, 0.8초에 1병씩 생산해 공장 밖으로 나가는데 1시간 30분이면 충분하다"며 "아직은 시운전 수준이라 생산 속도를 더 끌어올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물비린내 없이 '술맛' 내는 데 집중…쌀·보리 증류 원액 첨가가 비결



선양소주를 개발할 때는 도수와 칼로리를 낮추면서도 소주 본연의 향과 맛을 살리는 데 각별히 신경 썼다고 한다. 그동안은 대부분 쌀 증류 원액을 생산해 소주를 만들었는데, 선양소주는 장기간 숙성·보관한 쌀에 보리의 증류 원액까지 블렌딩해 물비린내를 잡고 풍미를 끌어올렸다는 설명이다.

소주는 도수가 낮아질수록 술의 향이 약해지고 첨가물의 맛이 도드라진다. 선양소주는 향을 유지하면서도 국내 최저 도수라는 상징적 의미를 갖기 위해 14.9도로 설정했다. 제품을 개발한 이용우 맥키스컴퍼니 식품공학박사는 "소주 도수가 높았을 때는 제품마다 맛에 큰 차이가 없었는데 도수가 낮아질수록 첨가물에 의한 맛의 미묘한 차이가 많이 발현되는 것 같다"며 "똑같은 첨가물 배합에 물의 양을 조절하는 식으로 도수를 15도에서 14도 초반까지 바꾸면서 단계별로 테스트를 수없이 했다"고 말했다.

새 소주에는 회사가 2005년 자체 개발한 산소숙성촉진공법을 적용했다. 이는 자연에서 포집한 산소를 세 차례에 걸쳐 소주에 주입하는 특허기술이다. 소주를 주입하기 전과 후 산소를 나누어 넣어주면서 라인을 따라 이동하는 소주병에서 탄산수 같은 기포를 볼 수 있었다. 산소를 주입하면 산소가 들어가지 않은 소주보다 알코올 분해 및 뇌기능 회복이 빨라 뒤끝 없으면서도 부드러운 맛을 살릴 수 있다고 한다.

흥미로운 사실은 선양소주가 따지고 보면 신제품이 아닌, 49년 만에 리브랜딩 된 제품이란 것이다. 1974~1993년 팔렸던 선양소주(25도)와 비교하면 도수는 무려 10도 낮아졌다. 그사이 '선양주조 주식회사'는 맥키스컴퍼니로 사명도 바뀌었다. 고 마케팅 팀장은 "2009년 여성 전용 소주로 16.9도짜리 '버지니아 소주'를 내놓은 적이 있는데 도수가 너무 낮아 소주답지 않다는 불편한 시선이 많았다"며 "오늘날 다양성을 표출하는 시대에서는 소비자가 저도수·무가당 소주를 개성 있는 차별화 상품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아 격세지감도 느낀다"고 했다.

대전= 이소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