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14.9도 선양소주가 등장하면서 마지노선으로 여겨졌던 '16도의 벽'까지 무너지자 소주 도수가 어디까지 내려갈지 궁금증도 커지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기술적으로 소주는 주정 함량을 줄이는 식으로 도수를 한도 없이 낮출 수 있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14도대보다 더 낮은 도수의 소주가 나오지는 않을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왜일까.
1924년 주류업체에서 처음 만든 소주는 35도였다고 한다. 국내 첫 주류업체 진천양조상회가 선보인 '진로'인데 곡류를 발효해 만든 밑술을 증류한 증류식 소주였다. 현재 가장 낮은 도수인 선양소주와 비교하면 한국식 소주가 탄생한 후 소주 도수가 20도 떨어지기까지 약 100년이 걸린 셈이다.
그로부터 41년 뒤인 1965년 알코올 도수가 30도로 내려왔다. 박정희 정부가 개정한 양곡관리법에 따라 쌀을 술을 만드는 데 사용하지 못하게 되면서 증류식 대신 알코올 원액인 주정에 물을 희석해 만드는 희석식 소주가 보급된 것이다. 이때부터 소주는 차츰 대중화하면서 어른들의 애환을 달래주는 '서민의 술'로 자리 잡게 된다.
주류업체의 경쟁이 치열했던 1970년대에는 소주 도수가 25도로 조정됐다. 이후 20년 넘게 모든 업체가 도수를 유지하면서 '소주=25도'라는 불문율이 생겼다. 저도수 경쟁의 열기가 달아오른 건 1998년 하이트진로가 23도의 '참이슬'을 내놓으면서부터다. 25도 공식이 깨진 후 소주 도수는 2001년 22도, 2004년 21도, 2006년 20도·19.8도로 몇 년에 걸쳐 내려왔다.
소주의 도수가 20도 이하로 떨어지면 소주의 개성이 사라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왔지만 그 이후로도 계속 떨어졌다. 2018년 4월 '처음처럼', 2019년 3월 '참이슬 후레시'가 각각 17도로 도수를 낮췄고, 2019년 4월 16.9도의 '진로'가 출시되면서 16도 시대가 열렸다. 지난해 하반기부터는 16도 이하에 당까지 뺀 무가당 소주가 쏟아져 저도수 경쟁도 새 국면에 접어들었다.
다만 업계 관계자들은 14도가 낮은 도수의 끝이라고 입을 모은다. 도수를 낮추기 위해 물을 많이 넣을수록 소주의 쓴맛이 줄어드는데 소비자 사이에서 여전히 '소주는 소주다워야 한다', '술 맛이 나야 한다'는 인식도 함께 존재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소주 도수가 더 낮아지면 청하(13도), 매화수(12도) 등 기존 저도수 주류와 겹쳐 상품으로서 소주의 포지셔닝이 무너지게 된다는 설명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보통 도수별로 다양한 포트폴리오를 갖춰놓고 소비자가 취향에 따라 주류를 선택하게 한다"며 "맥주, 과일소주 등과는 다르게 오리지널 소주만이 할 수 있는 역할이 있어 도수를 더 이상 내리는 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