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야구가 2023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보여준 부끄러운 민낯은 국내 팬들에게 생소하지 않다. 툭하면 10개씩 볼넷을 남발하고 4, 5개 정도 실책을 쏟아내는 질 떨어지는 KBO리그 경기를 심심찮게 봤기 때문이다. 그래도 수월한 조 편성 덕분에 3회 연속 1라운드 탈락 수모는 피하지 않을까라는 기대가 있었지만 역시나 KBO리그 경기력을 ‘복붙’(복사해 붙여넣기)했다.
지금 분위기라면 최근 국제대회 부진과 코로나19 영향 등으로 차갑게 식은 야구 인기가 더 떨어질 게 불 보듯 뻔하다. KBO리그는 국내 최고 스포츠 인기에 취해, 선수들은 돈(몸값)에 취해 있어 많은 팬들이 등 돌린 상황이다. 실제 야구 대표팀은 팬들의 무관심 속에 14일 초라한 귀국이 이뤄졌다. 현재 진행 중인 시범경기도 좀처럼 분위기가 살지 않는다.
최악은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의 암흑기로 돌아가는 것이다. 당시 KBO리그 인기는 바닥을 찍었다. 1999년 10월 7일 현대-쌍방울전이 열린 전주구장에서 역대 최소 관중인 54명을 기록했다. 2002년 10월 19일 한화-롯데전이 펼쳐진 부산 사직구장엔 고작 69명이 찾았다. 그리고 20년 후인 지난해에 위기가 현실화됐다. 4월 12, 13일 고척 NC-키움전엔 각각 774명, 893명밖에 오지 않았다.
현재 ‘억’ 소리 나는 KBO리그 수준은 눈에 띄게 낮아졌다. 리그 전체 볼넷은 2020시즌 5,000개(5,314개)를 돌파한 뒤 2021시즌 역대 최고인 5,892개를 기록했다. 야수 실책 역시 2022시즌 970개로 역대 최다였다. 10개 구단 체제가 되면서 양적인 팽창에 성공했지만 질적인 측면에서는 오히려 퇴보한 모양새다.
이런데도 한국야구위원회(KBO)는 리그 내실을 다지기보다 외연 확장과 인프라 확대에 집중하고 있다. 지난해 취임한 허구연 KBO 총재는 지난해 11월 메이저리그 초청 대회를 실무진의 만류에도 추진했다가 막판에 무산돼 망신을 당했다. 최근엔 2024년 KBO리그 미국 로스앤젤레스 개막전을 추진 중이다.
허 총재의 행보에 야구계에서는 “번지수를 잘못 짚었다”고 지적한다. 이번 WBC를 계기로 외연 확장이 아닌 내부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미다. 최고의 '팬 퍼스트'는 수준 높은 경기력임은 당연하다. 한 관계자는 “일본 팀들이 대만 팀들과 수준 차를 이유로 교류를 안 하는데, 미국이 한국과 하겠느냐”고 반문하며 “KBO리그 수준부터 끌어올려 일본 야구와 교류하면서 격차를 좁힐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리그 간판타자 이정후(키움)도 WBC에서 냉혹한 현실을 깨달았다. 그는 “이번에 어린 선수들이 많았는데, 우리 기량이 많이 떨어진다는 걸 느낀 대회였다”며 “각자 소속팀에 가서 부족한 부분을 잘 개선해야 한다”고 돌아봤다. 그러면서 “일본이 매년 국가대표 소집을 하는 반면 우리는 국제대회가 있을 때만 소집한다”며 “(대표팀) 친선경기 같은 걸 만들어주면 선수들이 가서 열심히 뛰고 경험을 쌓을 수 있을 것”이라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