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일본 도쿄에서 만나는 한일 정상회담에서 양국의 새로운 관계를 규정하는 공동선언문은 나오지 않을 예정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15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기자들과 만나 “이번에 한일 정상 간의 공동선언은 나오지 않는다”고 밝혔다. 대신 양 정상이 정상회담이 끝난 뒤 논의 결과와 이에 대한 각자의 입장을 양국 언론에 밝힌다는 구상이다.
이 관계자는 “10여 년 동안 한일관계가 계속 경색되고 불편한 관계를 이어왔고, 특히 2018년 이후 그러한 불편한 관계가 더욱 증폭되고 여러 중요한 사건이 일어나며 불신이 가중됐다”며 “그 이후 양국 정상이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그간 입장을 총정리하고 정제된 문구를 다듬기엔 시간이 부족하다”고 설명했다.
대통령실이 방일을 하루 앞두고 공동선언문이 없을 것이라고 선을 그은 건, 국내외 여론의 높은 기대치를 우려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이 전격적으로 일본을 방문하고 정상회담을 갖는 것이 한일 양국의 관계 개선을 위한 마중물이라고 보고 있지만, 국내에선 정부의 징용문제 해법 발표에 따른 일본의 전향적인 성의 표시가 뒤따를 것이란 전망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 관계자는 다만 “한일 간 새로운 미래를 여는 구상이나 합의 사항을 협의하고 준비하는 준비위원회를 이번에 만들 수도 있을 것”이라며 “그렇게 함으로써 이번에 기대하는 한일 공동선언을 좀 더 알차고 내실 있게 준비해서 다음 기회에 발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대통령실은 경제 협력 채널이 복원될 것이란 데 의미를 두고 있다. 최상목 경제수석은 별도 브리핑을 열고 "일본과의 관계 개선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며 “그간 중단된 양국 간 재무·통상·과학기술 등 경제분야 장관급 협력채널을 조속히 복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 수석은 "2019년부터 3년간 일본과 잃어버린 경제 효과가 총 20조 원에 달하는 분석이 있다"며 "한일관계 개선이 미뤄질수록 기회비용은 지금까지의 손실과 비교할 수 없게 커질 것"이라고 부연했다.
일본 요미우리신문이 윤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가 회담 이후 도쿄 번화가의 노포 두 곳에서 만찬을 진행할 것이라고 보도한 내용에 대해선 부인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저녁을 두 번 드실 수가 없다”면서도 "가능하다면 양 정상이 조금 더 시간을 가지고 허심탄회하게 얘기할 수 있는 기회와 공간을 (일본 측이) 생각 중인 거 같다”고 말했다. 여러 장소를 이동하며 담화를 나눌 가능성에 대해선 열어둔 것으로 풀이된다.
윤 대통령은 한일 정상회담을 앞두고 일본 내 정서를 최대한 보듬는 모습이었다. 일본의 요미우리 신문 외에 이날 하루에만 AP, 교도통신 등 해외 5개 통신사와의 방일 관련 인터뷰가 나왔다. 특히 윤 대통령은 요미우리신문과 인터뷰에서 윤 대통령은 '징용문제 해법이 향후 한국의 정권 교체 등으로 재점화될 수 있다'는 일본 내 우려에 대해 “관계된 국민을 설득하고 이해를 구해 나중에 구상권 행사로 이어지지 않을 방법을 검토했고, 이번에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러한 부분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판단하고 있다”며 “한일관계를 국내 정치에 이용하려는 정치 세력이 많이 있다. 외교 문제를 국내 정치에 멋대로 끌어들이는 것은 국익 차원에서 온당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정권이 바뀌게 될 경우) 구상권 행사를 하게 되면 한국의 징용문제 배상 해법을 근본적으로 뒤흔드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며 “그래서 외신(요미우리신문) 인터뷰에서도 대통령께서 이 문제를 징용해법 문제와 분리시키려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일관계에 정통한 원로들과의 오찬을 통해 조언도 청취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이홍구 전 국무총리, 김성재 김대중아카데미 원장, 최상용·라종일·유흥수 전 주일대사, 유명환 전 외교부 장관, 이대순 한일협력위원회 회장 등 원로 7명을 대통령실로 초청해 오찬을 함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