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실은 15일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일주일에 최대 69시간 근무를 허용하는 근로시간 제도개편안에 대해 "주당 최대 근로시간은 노동 약자의 여론을 더 세밀히 청취한 뒤 방향을 잡을 것"이라고 밝혔다. 윤석열 대통령이 전날 대국민 소통 보완을 지시한 후에도 근로시간 유연화에 대한 비판 여론이 가라앉지 않자, 아예 '주 69시간제'라는 기준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김은혜 홍보수석은 이날 오전 용산 대통령실 브리핑에서 "윤 대통령의 노동시장 정책 핵심은 MZ(1980년 대 초∼2000년대 초 출생) 근로자, 노조 미가입 근로자, 중소기업 근로자 등 노동 약자의 권익 보호"라고 설명했다. 이어 "근로시간 유연화 정책은 종래 주 단위로 묶인 것을 월, 분기, 반기, 연 단위로 자유롭게 노사 협의하도록 하되 주당 최대 근로시간은 노동 약자의 여론을 청취한 뒤 방향을 잡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통령실은 현행 주 52시간 근무제를 탄력적으로 운영한다는 방향성은 변함이 없다는 입장이다. 다만 일주일 최대 근로시간을 69시간까지 허용한 부분은 여론 수렴을 통해 새로운 기준을 마련할 방침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기자들과 만나 "그동안 주 69시간이 노동자 동의도 없이 추진되는 것처럼 알려지고 '69'라는 숫자에 (논의가) 제한된 측면이 있었다"며 "52시간에서 얼마나 늘려가는 게 타당한지 (논의를) 하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주 최대 근로시간이 69시간보다 더 줄어들 가능성이 있느냐'는 물음에 이 관계자는 "(정해진) 목표는 없다"고 했다.
대통령실의 기류가 확 바뀐 것은 윤 대통령이 준비 및 소통 미흡을 강하게 지적하면서다. 윤 대통령은 전날 "MZ세대 의견을 면밀히 청취하라"고 지시한 후에도 원안 보완에만 방점이 찍히자 참모들에게 '정확한 소통'을 재차 주문한 것으로 전해졌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통화에서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도 국민들이 반대한다면 할 수 없는 것"이라며 "대통령은 정답을 정해놓고 소통을 하자는 게 아니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8월 교육부의 '만 5세 초등학교 입학' 정책이 공론화 없는 발표로 논란을 빚었던 것처럼, 정책 수요자 입장에서 친절하게 설명하지 않으니 '아마추어 정부'라는 비판을 자초한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고 한다. 특히 이 과정에서 대통령실의 MZ세대 행정관들이 인터넷 커뮤니티의 비판 여론을 전달한 게 결정적 영향을 미친 것으로 전해졌다. 윤 대통령은 전날 안상훈 사회수석에게도 "커뮤니티의 반대 여론이 심각한 데도 대처하지 않고 방치하느냐"고 질타했다고 한다.
윤 대통령이 구상하는 '노동개혁'의 스텝이 꼬일 수 있다는 우려도 반영됐다. 현재 노동개혁은 양대 노총을 중심으로 한 기득권 노조의 각종 불법·탈법 행위를 엄단한다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노조 미조직 근로자와 MZ세대 등 노동 약자의 지지가 바탕이 돼야 밀어붙일 수 있는 사안이다.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근로시간이나 임금 개편 등 각종 노동 유연화 정책은 충분한 의견 수렴을 거친 후 천천히 해도 되는 것인데 고용부가 너무 서두른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