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말하면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라고 한다는 분이 있겠지만 하이브의 로드맵에서 중요한 축인 ‘플랫폼’ 관련 합의를 도출한 데다, SM 지배구조 개선에 기여했으니 만족스럽습니다."
한 달 가까이 진행된 카카오와의 치열한 SM엔터테인먼트 인수전으로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방시혁 하이브 의장이 입을 열었다. 15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관훈포럼에서다. SM 인수 절차를 포기한 지 사흘 만이다. 포럼 연설자로 나선 방 의장은 “하이브의 방향성에 부합하는 결단"이었다며 "아주 만족스럽게 생각 중"이라고 소감을 말했다.
하이브는 지난달 SM 창업자인 이수만 전 SM 총괄 프로듀서로부터 SM 지분 14.8%를 사들이며 최대 주주가 됐고 이후 추가로 공개매수를 시도하며 SM 인수에 강한 의지를 보였다. 그는 “SM 인수를 고려한 건 2019년부터였고, 총 두 차례 SM에 의사를 전했지만 거절당했었다”며 “이후 갑작스럽게 이 전 총괄로부터 지분 매수 의향을 묻는 연락이 오면서 인수를 결정했다”고 인수전 막후 과정을 들려줬다.
그러나 인수전이 카카오와의 이전투구로 격화될 것은 방 의장도 미처 예상하지 못한 부분. 그는 "과도한 시장 과열은 예상 밖이었다"며 "어느 순간 SM에 대해 생각해온 가치 수준을 넘어섰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음악을 우선시하고 좋은 영향력을 끼치겠다는 하이브 정신에 따라 (인수 포기를)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SM과 하이브의 결합으로 시너지 효과를 내겠다는 원대한 목표에도 불구하고 막대한 자본력을 가진 카카오와의 경쟁을 감당할 수 없었다는 간접 고백이다. 방 의장은 인수 과정과 관련해 이 전 총괄에게도 소상히 설명했다고 한다. 그러자 이 전 총괄이 "(하이브가) 이길 수 있을 텐데 왜 그만두지?"라는 말을 했다고 전했다.
하이브의 인수 포기에 대해 허무한 패배라는 일각의 지적에 대해서는 강하게 반박했다. 그는 "이번만 해도 K팝의 본질인 아티스트와 팬덤이 가슴앓이를 했고, 그들을 배려하지 못한 데 대한 미안함이 크다"며 "인수 여부 결정은 주주가치와 K팝의 본질을 우선적으로 고려할 일이지, 승리를 위한 오기로 접근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날 방 의장은 기조연설을 통해 K팝이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룬 건 맞지만 실은 위기를 맞았다는 지표가 뚜렷하다고도 했다. 미국 등 주류시장에서 K팝 성장률이 둔화하고, 동남아시아에서는 역성장 추세까지 보인다는 것이다. 그는 "위기의 원인에는 방탄소년단(BTS) 부재가 크다고 본다"면서도 "다만 BTS가 당장 복귀한대도 회복될 것 같지는 않다"고 우려했다.
SM 인수에는 실패했지만 방 의장은 미국 등 주류시장에 자리를 확보하도록 하이브의 덩치를 키우겠다고 강조했다. 하이브는 최근에는 미국 종합 미디어 그룹 이타카홀딩스와 미국 힙합 레이블 QC뮤직을 전격 인수했다. 그는 "라틴 음악계 최상급 매니지먼트나 미국의 주요 매니지먼트사 두 곳 등을 검토하고 있다"며 "올해 안에 기업 인수·투자 발표가 다수 이뤄질 것"이라고 귀띔했다. 한편 이 전 총괄에게 사들인 SM 지분 처분 절차에 관해서는 “오늘내일 중으로 직원들이 복귀하면 논의를 통해 가장 합리적이고 도리에 맞는 결정을 내리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