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김소월의 절창 ‘진달래꽃’은 한국 시사(詩史)에서 반어법의 백미로 꼽힐 만하다. 이 서늘하게 아름다운 시의 첫 연은 ‘나 보기가 역겨워/가실 때에는/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우리다’이다. 곧이곧대로 읽으면 ‘내가 싫어졌다니, 잘 가시라’쯤 되겠다. 하지만 ‘영변에 약산/진달래꽃/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우리다’로 이어지는 2연으로 넘어가면 “어라, 이게 뭐지?”하게 된다.
▦ 가는 길에 붉은 진달래꽃을 뿌리겠다? 어쩌자는 얘긴가 싶어지는 것이다. 그리곤 3연에서 ‘그 꽃을/즈려밟고 가시옵소서’라더니, 마지막 4연에 이르자 끝내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라는 통한의 신음이 터져 나온다. 그제야 독자들은 한 방울의 눈물을 떠올리게 되고, 1연의 ‘말 없이 고이 보내 드리우리다’가 사실은 ‘나는 죽어도 당신을 보낼 수 없다’는 피맺힌 슬픔의 반어(反語)임을 섬광처럼 깨닫게 된다. 그게 시적 반어법이다.
▦ 반어는 어려운 은유나 상징에 비해 문맥만 잘 따라 읽어도 저절로 직감되는 표현법이다. ‘사랑만 남겨놓고 떠나 가느냐/얄미운 사람’이라는 노래 가사만 해도 ‘얄미운’을 누가 정말 밉다는 걸로 이해하겠는가. 최근 김영환 충북지사가 그런 반어법을 썼다가 사방에서 친일파로 몰리고 있다. 페이스북에 정부의 일제 강제동원 피해 배상안을 ‘통 큰 결단’이라고 지지한 글을 올리며 ‘나는 오늘 기꺼이 친일파가 되련다’는 머리글을 붙인 게 화근이 됐다.
▦ 야권에서는 이번 배상안을 ‘굴욕외교’로 규정한다. 과거 경술국치에 빗대 ‘계묘국치’라거나, “이완용이 울고 갈 일”이라며 노골적인 ‘친일 프레임’을 씌우고 있다. 김 지사로서는 그 부당함에 대한 통렬한 비판을 반어법으로 표현한 게 분명하다. 그럼에도 현지 야당과 시민사회단체는 즉각 ‘친일 망언’ 현수막을 거리 곳곳에 붙이며 시위를 벌였고, 급기야 지역 공무원노조까지 들고일어나 도지사 시·군 순방마저 무산됐다고 한다. 정치판이 날로 강퍅해지고 있다지만, 이게 무슨 아사리판인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