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까지 '광현종'인가" 추신수 발언 현실화...한국 야구 슬픈 자화상

입력
2023.03.11 08:00
김광현, 양현종 동반 부진
후계자도 못 찾고 충격 2연패

"언제까지 김광현(SSG), 양현종(KIA)인가."

2023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야구 대표팀을 두고 한 추신수(SSG)의 작심 발언이 씁쓸하게도 현실화됐다. 여전히 KBO리그를 대표하는 두 좌완 에이스지만 국제 무대에서 더 이상 보여줄 경쟁력은 이제 없었다. 일본전에 선발 등판한 김광현도, 호주전에 구원 등판한 양현종도 자기 몫을 다하지 못했다.

그리고 이들을 대신할 '영건'들도 나오지 않았다는 게 더 안타까운 한국 야구의 현실이다. 왼손 계보를 이을 유력한 후보 구창모(NC)와 이의리(KIA)는 난타를 당하거나, 스트라이크조차 제대로 던지지 못했다.

이강철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은 10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2023 WBC B조 1라운드 일본과 2차전에서 마운드가 완전히 붕괴되며 4-13로 대패했다.

나가는 투수마다 일본 타자들에게 족족 두들겨 맞았다. 이날 투수 엔트리 15명 중 10명을 쏟아부었는데, 과거 ‘일본 킬러’로 명성을 떨쳤던 선발 김광현(2이닝 4실점)부터 원태인(삼성·2이닝 1실점)-곽빈(두산·0.2이닝 1실점)-정철원(두산·0.1이닝 1실점)-김윤식(LG·0이닝 3실점)-김원중(롯데·0.1이닝 1실점)-구창모(0.1이닝 2실점)까지 7명이 모조리 실점했다.

2006 WBC 1회 4강, 2009 2회 준우승 팀이라는 명함을 내세우기 힘들 만큼 낯 부끄러운 한국 야구 수준이었다. 호주와 1차전 충격패로 벼랑 끝에 몰린 대표팀은 14년 만에 성사된 WBC 한일전에서도 크게 져 3회 연속 1라운드 탈락이 유력해졌다.

당초 불펜 자원으로 분류됐다가 호주전 패배로 일본전 선발 중책을 맡게 된 김광현은 초반에 부쩍 힘을 냈다. 1회말에 두 타자를 깔끔하게 처리한 다음 일본의 자랑 오타니 쇼헤이(LA 에인절스)를 풀카운트 승부 끝에 헛스윙 삼진으로 잡아냈다. 2회말엔 1사 후 마사타카 요시다의 땅볼 타구를 잡은 2루수 토미 현수 에드먼(세인트루이스)이 1루에 악송구를 하며 요시다는 2루까지 달렸다. 기록은 내야 안타다. 그러나 김광현은 흔들리지 않고 두 타자를 연속 삼진 처리했다.

김광현이 분위기를 끌어올리자 3회초에 타선이 응답했다. 선두 타자 강백호(KT)가 일본 선발 다르빗슈 유(샌디에이고)의 3구째 직구를 받아 쳐 좌중간을 가르는 2루타를 쳤다. 전날 호주전에서 2루타를 친 뒤 세리머니를 하다가 주루사를 당했던 강백호는 이번엔 베이스에서 발을 떼지 않고 다시 한번 호쾌한 세리머니를 펼쳤다. 무사 2루에서 양의지(두산)가 선제 2점포를 터뜨렸고, 계속된 2사 2루에선 이정후(키움)가 적시타를 터뜨려 3-0으로 앞섰다.

하지만 리드는 딱 3회초까지였다. 3회말 김광현은 오버 페이스를 한 나머지 볼넷 2개를 연거푸 허용했다. 이후 라스 눗바(세인트루이스)에게 1타점 적시타, 2번 곤도 겐스케에게 1타점 2루타를 맞고 강판했다.

그 이후 대표팀 마운드는 처참했다. 특히 대표팀 훈련 때부터 일본 오사카 연습경기까지 컨디션이 좋지 않았던 구창모와 이의리가 결국 끝까지 제 몫을 하지 못했다는 점이 뼈아팠다. 구창모는 3명의 타자를 상대하면서 안타를 2개 맞고 허무하게 내려갔다. 구창모에게 공을 넘겨 받은 이의리는 강속구를 뿌렸지만 스트라이크를 못 던져 볼넷만 3개를 남발했다. 앞서 등판한 신예 김윤식 역시 3명을 상대하며 아웃카운트 하나 잡지 못하고 4사구 3개를 기록했다.

이강철 감독은 일본전을 마친 뒤 "좋은 투수들인데 자기 역량을 발휘하지 못했다"며 "젊은 투수들이 경험을 쌓으면 다음에 더 올라오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밝혔다.

도쿄 김지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