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곡 '동심초'를 좋아하게 된 것은 소프라노 신영옥을 통해서였다. 1995년 발매된 신영옥의 음반 '보칼리제'에는 두 곡의 우리 가곡이 실려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김성태 작곡 동심초였다. 신영옥이 부른 동심초는 그야말로 절창(絶唱)이었고 무엇보다 가사가 절묘했다. 작사자를 찾아보니 신사임당이라는 곳도 있었고 김안서라고 하는 데도 있었다. 더 확인해 보니 신사임당은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김안서가 누구지?' 하고 더 알아보니 안서 김억(金億)이었다. 안서(岸曙)는 그의 호이다. 김억은 국문학사에서 주요한 등과 함께 한국 근대시의 개척자로 평가받고 있고 김소월의 스승으로 유명하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동심초의 가사는 김억이 창작한 것이 아니라 번역한 것이었고 원작자는 따로 있었다. 당시 원작자를 확인하고 전혀 예상 밖이어서 놀랐던 기억이 있다. 원작자는 8, 9세기 중국 당나라 때의 시인이자 기녀인 설도(薛濤). 동심초의 가사는 그의 시 춘망사(春望詞) 총 4수(首) 가운데 제3수를 번역한 것이었다. 예상 밖이라고 한 것은 여성의 사회활동이 거의 봉쇄되었던 전근대 동양 사회에서 예외 중 하나가 기녀로서 시작(詩作) 활동을 하는 것이긴 해도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조선시대 중기에 들어와서야 그러한 활동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설도는 그보다 훌쩍 앞선 시대에 활동했기 때문이었다.
시대만 앞선 것이 아니라 설도의 시는 그 양과 내용도 풍성하다. 설도는 500수 이상의 시를 남겼다고 알려져 있고 그중 90수가량이 전해지고 있다. 현재까지 설도의 것으로 전해오는 시 전부를 우리말로 번역한 '완역 설도시집'(류창교 역해)이 2012년 출간된 바 있다. 이 시집을 읽어가노라면 기녀 신분 여성 시인의 시에 대한 통념과는 다른 부분이 느껴진다. 시집의 역해자도 지적하는 바인데, '불타는 사랑의 정염' 같은 것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물론 설도의 시에도 기녀이기에 이루지 못한 사랑과 맺지 못한 부부의 연에 대한 안타까움, 그리움, 탄식, 체념의 정조가 있다. 그러나 절제되어 있으며, 칸을 뚫고 나오는 파격적이고 때론 파괴적인 에로스의 불길로는 이어지지 않은 듯하다. 시에 신선, 선계를 나타내는 시어가 곧잘 등장하고 말년에 자신을 여도사(女道士)로 칭한 데서 알 수 있듯이 설도는 당대에 유행한 도교에 심취했다고 하는데 세속에 초연한 도교적 세계관이 일종의 완충작용을 한 것도 같다.
가곡 동심초의 모태가 된 춘망사에서 '춘망'은 문헌에 따라 '망춘'으로도 적고 있다니 그 의미를 '봄에 바라보다', '봄을 바라다' 정도로 옮길 수 있을 것 같다. 설도는 무엇 때문에 봄을 바라고, 봄에 무엇을 바라보았을까? 춘망사 제1수가 답이 될지 모르겠다.
花開不同賞 꽃이 피는데 함께 즐기지 못하고,
花落不同悲 꽃이 지는데 함께 슬퍼하지 못해요.
慾問相思處 서로가 그리운 곳 물으려 한다면,
花開花落時 꽃이 피고 꽃이 지는 때라 하지요. (류창교 역)
어느새 봄이 온 듯하다. 몇 년간 봄이 와도 봄 같지 않게 느끼게 했던 코로나의 안개도 이제 거의 걷히는 것 같다. 사랑하는 이, 마음을 같이하는(同心) 이들과 함께 봄꽃 피고 지는 것 보며 때로 경탄하고 때로 아쉬워하는 평화롭고 소박한 일상. 천여 년 전 설도가 바란 봄의 모습이자 지금 우리가 봄을 바랄 충분한 이유이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