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콜로라도주 인구 10만 명의 작은 도시 ‘볼더 밸리’ 주민들은 용감했다. 지역에는 3만1,000명의 학생이 다니는 56개 초ㆍ중ㆍ고등학교가 있었다. 주민들은 ‘공간이 교육을 바꿀 수 있다’는 신념으로 2014년 투표를 통해 5억7,600만 달러(약 8,000억원)를 학교 재건축에 쓰기로 결정한다. 미국 명문 콜로라도대와 미국국립표준기술연구소(NIST)를 비롯한 정부연구소가 있는 볼더 밸리는 작지만 경제력이 강한 강소 도시.
새로운 학교는 학생들의 창의력을 극대화하도록 설계됐다. 학교 로비는 학생과 방문객이 따뜻하고 편안하게 느낄 수 있도록 호텔 로비처럼 만들었다. 교실은 ‘학생 주도 학습’을 구현할 수 있도록 가구 배치를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게 했다. 도서관인 ‘큐리오시티 센터’에는 3D 프린터, 로보틱스, 디지털 녹화 장비를 설치, 학생들이 디자이너, 기술자, 영화감독으로 변신할 수 있도록 했다. 책을 보며 드는 생각은 딱 한 가지다. ‘이런 학교라면 가고 싶다.’
‘내일 학교’는 현대 학교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청사진을 제시하는 책이다. 건축가이자 디자이너인 프라카시 나이르와 로니 닥터리, 하버드대 교육대학원 교수인 리처드 엘모어가 공동으로 집필했다. “우리는 학교의 물리적 환경을 디자인하는 것이 사회적, 정서적, 창의적 공간을 더 잘 드러나게 할 뿐 아니라 더 잘 사용하게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
책은 “인터넷이 우리 존재의 필수적인 일부가 된 이후로, 학교가 더 이상 그 본래 목적인 지식과 콘텐츠를 전달하는 장소로 존재할 수 없게 됐음은 자명하다”는 문제 의식에서 출발한다. 교사 한 명이 네모난 교실 방에서 정해진 시간에 학생 수십명에게 지식을 주입하는 ‘방(房)과 종(鐘) 교육 모델’에 유효기간이 지났다는 사망 선고다. “우리는 교육자들이 아이들을 위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거의 모든 학습 목표를 물리적 학교 환경이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있다고 단언한다"고도 한다.
너무나 맞는 말이다. 인공지능(AI)과 대화를 나누고 우주로 도약하는 시대에 교과서 공부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일반적 지식을 가르치는 학교의 의미가 사라졌다면 학교는 대체 왜 존재해야 할까. 변화하는 시대에 걸맞게 학교를 새로 디자인해야 할 때다. 물론 ‘예쁜 디자인’이 아니라 ‘교육 목표에 맞는 디자인’이 필요하다. 저자들은 ‘자기주도적’ ‘서로 다른 연령 혼합’ ‘협력하는 교사 팀’ ‘시간에 매이지 않는 수업’ 등의 구체적 목표와 사례를 제시한다.
가령 뉴욕 호러스 그릴리 고등학교는 교실 3개를 통폐합해 '기업가 정신'을 교육하는 아이랩으로 만들었다. 미시간주 믈룸필드 힐스 고등학교는 아예 교실을 모두 없애는 대신 학생들이 수업 시간마다 팀을 정해 수업을 하도록 했다. 학교 곳곳에서 맞춤형 작은 과외가 일어나는 식이다. 저자들은 “이 정도의 물리적 변화는 예산이 부족한 학교와 학군에서도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며, 여름 방학 동안 쉽게 공사를 마칠 수도 있다”고 말한다. 사실 교육 혁신을 위해 필요한 건 예산이 아니라 한발 내딛는 용기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