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처에 '사랑 이야기'다. TV를 켜면 약간의 콘셉트만 달리한 짝 찾기 예능이 채널마다 방영되고, 뭇 가수가 사랑을 노래한다. 유튜브에는 '밀당 잘하는 법' 같은 연애팁을 알려주는 채널이 인기를 끌고 외로운 청춘들은 스마트폰을 켜 운명적인 짝을 마주칠 것을 기대하며 데이팅 애플리케이션을 들락거린다. 현대인의 이 모든 열정적 행위에도 불구하고 뾰족한 답이 없는 한 가지 질문. 사랑이란 무엇인가.
신간 '사랑을 배울 수 있다면'은 우리가 알고 싶은 사랑의 모든 것을 논한다. 제목만 봤을 때 지금 당장이라도 사랑이라는 영원한 수수께끼를 풀 수 있는 단초가 담겨 있을 것만 같다. 그러나 사랑을 잘 하는 '스킬'에 관한 책일 줄 알고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을 집어 들었다가 당혹스러웠던 경험이 있다면 이번엔 같은 실수를 범하지 않길 바란다. '사랑을 이해하는 철학적 가이드북'이라는 부제처럼, 플라톤에서부터 사르트르, 니체, 바디우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철학적 담론을 통해 사랑의 의미와 그 실천 방법을 고찰하는 다소 심오하고 복잡한 책이기에.
'우리 시대의 낭만적 사랑을 재발명하는 것'이라는 미국 초판(1994)의 부제에서 엿볼 수 있듯, 책의 주요 논지는 사랑을 '재발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시대가 사랑에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고 집착하면서, 사랑이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를 더이상 성찰하지 않게 되었으므로 우리는 매 순간 사랑의 의미를 찾아내야만 한다. 선천적 심장희소질환을 갖고 태어나 유난히 삶의 의미와 목적을 찾는 데 한평생 골몰했던 저자, 로버트 C. 솔로몬 미국 텍사스대 철학과 교수는 과감하게 말한다. "우리가 사랑에 대해 말하고 믿는 많은 것들이 실상 쓰레기에 불과하다."
저자가 생각하는 사랑에 대한 여섯 가지 잘못된 관념은 이렇다. ①사랑은 느낌이다 ②사랑을 이해하는 것은 관계의 역학을 이해하는 것과 같다 ③사랑은 그 자체로 좋으며,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사랑이다 ④사랑은 러브 스토리와 같거나 같아야 한다 ⑤사랑은 본질적으로 아름다움과 연관되어 있다 ⑥사랑은 젊은이들을 위한 것이다. 도파민 호르몬의 영향을 받아 느끼는 짜릿함과 설렘을 사랑이라 생각하고, 그것이 청춘만의 애끓는 전유물이라 여기는 통념과는 정면배치된다.
이를테면 어느 한적한 시골 마을의 노부부를 상상해보자. 평생에 걸친 동반자로 살아온 그들이 평온하게 조간신문을 읽고, 조용하게 식사를 하는 풍경은 여느 '로맨스 소설'이 묘사하는 낭만적 사랑과는 자못 다르다. 필경 한때 그들에겐 사랑의 라이벌도 있었고 분노와 원망 가득한 시기도 있었겠지만, 이 같은 드라마는 그들이 나눈 전체 세월의 아주 일부분에 불과하다. 아마 "사랑해"라는 표현도 거의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 부부를 감싸고 있는 기류가 '사랑'이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대체 사랑은 무엇이란 말인가.
프롬은 정신분석학 관점에서 "사랑은 단순한 감정이 아닌, 의지와 실천의 산물"이라 했으며, 사회학자 에바 일루즈는 "사랑이 자본주의 소비사회에 편입됐다"고 봤다. 프로이트를 따르는 이들은 성욕을 사랑으로 환원한다. 그렇다면 오히려 "진정한 사랑이라는 것은 없다"면서도, 사랑이 일시적 열정이 아닌 행위자들이 만들어가는 '과정'임을 강조하는 저자의 견해가 어쩌면 이 모든 논의를 포괄할 수 있지 않을까.
궁극적으로 저자는 플라톤의 대화록 '향연'에 등장하는 극작가 아리스토파네스의 연설을 꺼내와 자신이 생각하는 사랑의 개념을 구체화한다. "사랑이란 공유된 자아-정체성, 우리 각자가 자신의 나머지 반쪽을 찾으려는 절절한 필생의 노력"이라며 "타인을 통해 자신의 자아를 재정의하는 경험이라는 것"이다.
책은 사랑을 겪으면서 흔히 부딪히는 낭만적 끌림, 환상, 섹스와 친밀성, 평등과 권력투쟁, 우정 등 복잡다단한 현상을 철학적으로 다루는데, 이 사유들은 실제 삶에서도 활용할 수 있는 단단한 무기가 될 법하다. '썸' '그린라이트' 같은 얄팍한 정서가 연애의 추동을 설명하고, '캐쥬얼 섹스' '어장관리' 같은 신조어가 관계의 본질을 덮어버리는 '오늘날 사랑'이 지겨울 때면, 이 책을 통해 사랑을 이해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