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연(50)은 지난달 tvN '일타 스캔들' 마지막 촬영을 마치고 드라마에서 딸처럼 키웠던 조카 해이(노윤서)를 끌어안고 소리 내 울었다. 종방 후 지난 5일 서울 마포구 한 카페에서 만난 전도연은 "진짜 내 가족이랑 헤어지는 기분이었다"고 소감을 털어놓았다.
1992년 'TV손자병법'으로 연기를 시작해 그간 50여 작품에서 산전수전을 겪었던 베테랑 배우에게도 이 드라마는 각별했다. '전도연과 그보다 열 살 연하인 정경호(40)와 로맨틱 코미디가 어색하지 않을까.' 드라마 시작 전부터 방송계 안팎에서 들려오는 우려의 목소리를 그도 모두 듣고 있었다. 전도연은 "이 작품을 하면서 '로맨틱 코미디를 할 수 있는 여배우'란 선입견에 대해 적나라하게 느꼈다"고 했다. "아직도 여자 나이를 따지는 게 기분 좋을 리는 없죠. 로맨틱 코미디 장르가 젊은 친구들의 전유물도 아니고요. 나이 들어서도 그들만이 보여줄 수 있는 얘기가 있는 거잖아요. 이 흥행이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틀을 깬 게 아닐까 싶어요."
그의 말처럼 '일타 스캔들'은 5일 17%란 높은 시청률로 막을 내렸다. 넷플릭스를 통해 한국뿐 아니라 일본에서 지난달 27일부터 이달 7일까지 시리즈 부문 1, 2위를 오르내리며 사랑을 받았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주체적으로 삶을 이끌고 나간 행선을 전도연이 단단하고도 밝게 연기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사실 전도연의 '일타 스캔들' 외출은 파격 행보로 여겨졌다. 그동안 용서('밀양')와 위태로운 삶('인간실격') 등 무겁고 철학적인 주제를 파고든 '칸의 여왕'이 느닷없이 넉살 좋은 반찬가게 아줌마로 나와 학원강사(정경호)와 '늦사랑'이라니.
"그간 밝은 캐릭터 출연 제의가 뚝 끊겨" 갈증을 느끼고 있었지만 전도연도 처음엔 이 드라마 출연을 고사했다. "행선이 부담스러웠고 자꾸 그 배역에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이 떠오른 게" 주저한 이유. "판타지 로맨스 장르지만 그 안에서 행선을 현실적으로 그리고 진짜 있을 법한 가족 이야기를 보여주고 싶다"는 작가의 말에 그는 결국 마음을 바꿨다.
어둡고 심각했던 드라마와 영화 속 모습과 달리 전도연의 유쾌한 평소 모습은 촬영을 거듭할수록 행선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전도연은 "대사가 정말 많고 말이 빨라 고민하면 친구들이 '왜 대사를 외워? 입만 열면 행선인데'라더라"며 웃었다. "요리뿐 아니라 살림하는 걸 좋아하는 터라" 반찬 만드는 일도 딱히 거리감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는 이날 인터뷰 장소에 색조 화장을 전혀 하지 않은 얼굴에 마스크를 쓴 채 통 넓은 청바지를 입고 나왔다. 행선과 똑같은 모습이었다. "이렇게 잘했는데 또 (밝은 캐릭터의 작품이) 들어오지 않겠어요?"
30년 넘게 연기 활동을 이어온 그는 "마음만은 늙지 않길" 바라고 있다. "어떤 작품을 하더라도 더 백지 상태로 인물을 받아들이고 싶은" 욕심이다. 반찬가게 아줌마를 연기한 그의 다음 행보는 '킬러'(영화 '길복순'·31일 넷플릭스 공개)다.
"제 꿈이 '현모양처'라는 걸 듣고 웃겼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집에선 현모양처인데 밖에선 킬러인 이 역할을 줬다고요. 중학생 아이 뒷바라지하며 엄마로 성장하고 있고 배우로서도 연기를 알아가는 중인 것 같아요. 저도 제가 이 나이가 되리라 상상 못 했지만, 자연스러운 일이잖아요. 그 변화 안에서 제가 할 수 있는 걸 찾아가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