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3분의 1 시간이 필요한, 잠
학창시절 '사당오락(四當五落)' 즉, '4시간만 자고 공부하면 시험에 합격하고 5시간 자면 떨어진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잠을 줄여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시험 합격의 절박함이 잠을 줄이는 것과 직결되던 시절, 잠을 많이 잔다는 것은 '게으름' 또는 '포기'의 다른 말이었다.
직장인은 또 어떠한가. 늦게까지 야근하느라 불 켜진 사무실은 '발전'과 '성장'의 상징이었고 '칼퇴'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우리는 인생의 3분의 1에 가까운 시간을 자고 있다. 하지만 잠을 자는 것은 낮 동안의 일상에 마침표를 찍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으로 간주되었고 잠을 많이 자는 것은 일상을 허비하는 아까운 시간으로 여겨졌다.
보건산업진흥원의 '수면산업 실태조사 연구(2019)'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의 평균 수면시간은 7.24시간으로 OECD 국가의 평균 수면시간 8.22시간에 미치지 못한다. 청소년 역시 평일 기준 수면시간은 7.2시간(여성가족부, '2022 청소년통계')으로 하루에 인터넷을 이용하는 8시간보다 잠자는 시간이 더 부족하다.
더욱이 수면부족은 개인 차원에서의 능률 저하나 건강을 해치는 것을 넘어 국가 차원에서의 경제력 손실로 이어지고 있기도 하다.
오늘 밤도 잘 자기 위한 슬리포노믹스의 시대
BTS 뷔는 '오늘 밤도 잘 자요'를, 박보검은 '좋은 잠을 꺼내 먹어요'를 침대 위에서 편안한 목소리로 광고한다. 대중적 수면산업을 이끄는 침대는 가구를 넘어 다양한 기능을 탑재하여 판매, 렌털 등으로 유통망이 확대되고 있다.
생활 수준이 높아지면서 자연스레 수면의 질을 높이는 것에도 관심을 넘어 기꺼이 지갑을 여는 시대가 되었다. 이른바 슬리포노믹스(Sleeponomics, Sleep+Economics)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수면산업은 매트리스, 베개, 이불 등의 침구뿐만 아니라 수면 관련 제약 및 의료기기, 건강기능식품 등을 비롯해 조명, 사운드, 아로마 등의 테라피용품, 잠옷, 양말, 안대 등의 생활용품 등의 제조, 유통, 서비스 등이 모두 포함된다.
특히 최근에는 사물인터넷, 빅데이터 등의 기술과 결합한 슬립테크(Sleeptech)로 확대되는 추세이다. 손목의 디바이스를 통해 수면상태를 분석하여 건강정보와 연계하기도 하고, 앱을 통해 수면에 도움이 되는 음악, 조명, 실내온도가 자동으로 제어되기도 한다. 최근 국내 1호 디지털 의료기기로 허가된 '솜즈(Somzz)' 역시 불면증을 치료하기 위한 목적으로 개발된 소프트웨어 의료기기이다.
전문가의 도움으로 수면의 질도 Up
국내 수면산업 규모는 꾸준히 성장하여 2021년 3조 원을 넘어섰다. 하지만 미국, 캐나다 등 해외에 비해 태동기 수준이며 해외의 경우 영유아, 청소년, 회사원 등을 대상으로 수면에 대한 정보와 컨설팅을 제공하는 전문가들이 활발히 활동하고 있고 수면 상담과 컨설팅 인력 양성을 위한 전문 교육과정이 운영되고 있기도 하다. 고객의 숙면환경조성을 위해 호텔에 고용된 전문가도 있다.
최근 국내에도 해외처럼 점차 수면 관련 직업이 늘어나고 있다. 별도 교육을 이수한 후 침구와 수면의 관련성을 소개하고 소비자에게 제품정보 제공과 판매 업무를 하는 '수면 코디네이터', 대학에서 임상병리학을 전공하고 병원의 수면클리닉에서 수면 질환을 알아보기 위한 검사를 시행하는 '수면 기사', 영유아의 숙면을 위해 아이와 부모를 대상으로 컨설팅을 제공하는 '수면 교육 전문가' 등이 그들이다.
이처럼 잘 자는 것을 도와주는 다양한 직업이 생기고 관련 시장이 커지고 있으나, 전문가들은 건강한 잠은 침대 위에서 핸드폰을 보는 등의 '습관'을 제거하는 노력에서부터 시작된다고 조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