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소 이주노동자들이 당면한 차별과 열악한 노동환경은 조선업의 복잡한 하청 구조와 외국인력에 대한 우리 사회의 편협한 시선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업황에 따라 손쉽게 사용할 수 있는 '저렴한' 인력으로 이주노동자들을 바라보면서 이들이 한국 사회에 정착하는 것에는 강한 거부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우춘희 이주인권 연구활동가는 캄보디아 이주노동자들을 연구한 책 '깻잎 투쟁기'에서 "정부는 이주노동자를 일손이 필요한 곳에 데려다 채우는 '인력 수급 정책'의 대상으로만 보고, 이들이 어떻게 지내는지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며 "한국인에게 상식적이지 않은 정책은 이주노동자에게도 부당한 정책"이라고 지적했다.
정부는 지난달 27일 5개 대형 조선사와 협력업체들이 참여한 가운데 '조선업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을 위한 상생협약'을 체결했다. 원·하청이 자율적인 대화를 통해 이중구조 문제를 해결하도록 한 것으로 △원청은 하청에 적정 기성금을 지급하고 △하청은 임금인상률을 높여 원·하청 간 보상 수준의 격차를 최소화하겠다는 내용을 담았다.
그러나 상생협약에서도 이주노동자와 관련한 내용은 '인력 활용 확대를 지원한다'는 것뿐이었다. 이주노동자들의 이탈을 막을 노동환경 개선이나 지원 없이 △조선업 전용 외국인력 쿼터 신설 △숙련 외국인력 장기근속 특례 마련 등 이주노동자 고용 관련 대책만 내놨다. 금속노조 관계자는 "지금 같은 상황에선 외국인을 많이 뽑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라며 "노동조건이 개선되지 않으면 내국인이 먼저 조선소를 버리고, 대신 들어온 외국인들이 최저임금을 받으며 일하다 결국 떠나고 말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주노동자들의 처우는 오히려 열악해지고 있다. 1인당 국민총소득(GNI)의 80% 이상을 줘야 했던 E-7 노동자 임금은 앞으로 70% 이상만 주면 된다. 높은 물가상승에도 임금이 깎이는 셈인데, 때문에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연장근로와 특근을 한다. 주말에는 다른 업체에서 '아르바이트'하는 경우도 많다. 김현미 연세대 교수는 "휴식과 재충전을 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이는 셈"이라며 "이들의 축적된 피로는 사고 위험성에 노출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지적했다.
조선업이 숙련 인력을 확보해 생산성을 높이려면 핵심 인력으로 자리 잡은 이주노동자의 노동환경을 개선하고 정착을 도와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박종식 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원·하청 문제를 넘어 하청 내 내국인과 외국인 간 차별 문제를 방치하면 조선업은 이중구조가 아니라 삼중구조가 될 수도 있다"며 "원청과 지자체가 적극적으로 이주노동자들의 임금 수준을 높이고 처우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들을 국내 조선업 핵심 인력으로 키우기 위해 장기적인 정착을 지원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김현미 교수는 "현장에 가 보면 젊고 소통이 가능한데다 숙련도도 높은 기능공은 한국에 들어온 지 10년이 넘어 미등록 체류자가 된 경우가 많다"며 "이주노동자를 급하게 데려와서 일손을 메우는 역할로만 활용할 게 아니라, 장기적으로 외국인 고기능자가 국내에 정착할 수 있도록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