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론스타 사건 몸통' 스티븐 리… 도피 17년 만에 미국서 체포

입력
2023.03.05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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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은행 헐값매각, 외환카드 주가조작 등
업무상 배임, 조세포탈, 횡령 등 혐의받아
검찰 수사 피해 2005년 출국… 도피 생활
한·미 당국 공조로 덜미… 인도 재판 예정

'외환은행 헐값 매각 사건' 주범인 스티븐 리(한국명 이정환·54) 전 론스타코리아 대표가 해외 도피 중 체포됐다. 법무부가 2006년 8월 미국 측에 범죄인 인도 청구를 한 지 약 17년 만이다.

법무부는 한·미 사법당국 공조로 미국 뉴저지주에서 2일(현지시간) 한국계 미국인 이씨를 체포했다고 5일 밝혔다. 이씨는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가 국내 정·관계 로비를 통해 2003년 외환은행을 헐값에 사들인 뒤 매각해 막대한 차익을 남기고 철수했다는 의혹의 중심에 있던 인물이다. 론스타가 외환은행 매각 지연 및 국세청의 부당 과세로 손해를 입었다며 한국 정부를 상대로 2012년 5월 제기한 5조 원대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의 핵심 증인이기도 하다.

하버드대 경영학 석사(MBA) 출신으로 알려진 이씨는 30대에 론스타코리아 대표 자리에 올랐다. 그는 1998년 론스타 한국 지사 설립 때부터 부실채권을 싼값에 인수한 뒤 비싸게 되파는 방식으로 막대한 이익을 챙긴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 역삼동 스타타워 빌딩과 극동건설, 외환은행 인수까지 굵직한 거래들을 주도했다. 론스타 경영진이 외환은행 투자를 꺼릴 때 한국 당국자 및 금융권 인사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 투자를 성사시킨 것으로도 알려졌다.

그러나 국세청이 론스타에 1,400억여 원의 세금을 부과하고 이씨 등 전·현직 임원 4명을 147억 원 탈세 혐의로 검찰에 고발할 무렵 론스타코리아 대표 및 외환은행 사외이사 직에서 물러났다. 이씨는 검찰이 본격 수사에 착수하기 전인 2005년 9월 출국해 도피생활을 이어왔다. 검찰은 그를 기소중지하고 미국에 범죄인 인도를 청구했다.

그는 2006년 대검 중수부의 론스타 수사 당시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수사 대상이기도 했다. 검찰은 당시 이씨가 외환은행 매각 비리와 외환카드 주가조작 사건, 론스타 펀드 수익률 조작 및 탈세 사건 등에서 핵심 역할을 한 것으로 보고 업무상 배임과 조세포탈, 횡령 등 혐의로 수사했다. 배우자 명의로 홍콩에 유령 컨설팅 회사를 세운 뒤 국내 기업들에 자문료 명목으로 18억여 원을 받아 해외로 빼돌린 혐의 등 개인비리도 포함됐다.

재판에 넘겨진 유회원 전 론스타코리아 대표는 론스타가 싼값에 외환카드를 흡수합병하기 위해 허위 감자설을 퍼뜨려 외환카드 주가를 떨어뜨린 혐의로 2012년 2월 징역 3년을 확정받았다. 검찰은 유 전 대표와 론스타 관계자 3명이 범행을 공모했다고 보고, 공모자로 당시 론스타 부회장이었던 엘리스 쇼트, 론스타 파견 외환은행 이사였던 마이클 톰슨, 그리고 한국 지사장이었던 이씨를 지목했다.

이씨는 2017년 8월 6일 인터폴 적색수배로 이탈리아에서 체포된 바 있다. 법무부는 같은 해 8월 22일 범죄인 인도를 청구했지만, 이씨는 이미 현지 법원에서 공소시효 도과 등을 이유로 석방된 상태였다.

법무부는 한동훈 장관 취임 후 지난해 새 지휘부가 꾸려지면서 론스타 사건 전면 재검토에 착수했다. 이노공 법무부 차관은 지난달 일본에서 열린 '아·태 지역 형사사법포럼'에 참석한 것을 계기로 미국 법무부 고위급 대표단과 양자회의를 개최해 이씨에 대한 범죄인 인도 절차의 신속 이행을 요청했다. 이후 미국에 이씨의 최신 소재지 분석 자료를 제공하는 등 적극적인 공조가 이뤄지면서 검거할 수 있었다는 게 법무부 설명이다.

이씨는 현지에서 범죄인 인도 재판을 받게 된다. 이씨가 심사 결과에 불복할 경우 송환 절차가 지연될 수 있다. 법무부 관계자는 "미국 법무부 및 뉴저지주 연방검찰청 협력에 감사의 뜻을 표한다"며 "미국 측과의 긴밀한 협조하에 인도 재판을 진행해 스티븐 리를 신속하게 송환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유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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