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반도체 산업에 대규모 제재를 가했던 미국이 중국의 다른 첨단 산업들에 대한 투자까지 금지하는 방안을 마련 중이라고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미국 주요 언론들이 보도했다. 이번에 투자 금지 대상으로 거론된 분야는 양자 컴퓨터와 인공지능(AI) 등이다. 군사 역량 증진과 연관이 있는 중국 기업의 돈줄을 아예 막겠다는 계획이라, 중국 첨단 산업이 받는 타격이 적지 않을 전망이다.
이미 반도체 수출규제를 놓고 대립하고 있는 미중 간 갈등도 더 커질 수밖에 없다. 미국이 새 규제 준수를 동맹국에도 요청할 가능성도 있어, 중국과 밀접한 경제적 관계에 있는 한국과 유럽연합(EU)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4일(현지시간) 미국 정부가 의회에 제출한 보고서에 따르면, 조 바이든 행정부는 중국의 첨단 산업에 대한 미국 자본의 투자를 아예 금지할 수 있는 새 규제를 준비하고 있다. 다만 첨단기술 산업이 무엇인지는 구체적으로 언급되지 않았다.
미 정부 규제의 초점은 주로 중국의 군사력 증진과 관련된 분야에 맞춰질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정부 소식통은 새 규제에 첨단 반도체는 물론 양자 컴퓨터, AI 등의 분야가 포함될 것으로 내다봤다. 미 정부는 보고서를 통해 "미국 투자자와 기업에 과도한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도, 미국 자본과 전문성이 미국의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데 악용되는 것을 막으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새 규제는 조만간 마련될 것으로 보인다. 미 정부는 보고서에서 "관련 정책을 이른 시일 내에 확정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며 "다음 주 발표될 백악관 예산에 이와 관련한 재원이 반영될 수 있다"고 전했다.
규제가 현실화하면 중국 산업계로선 상당한 타격을 입는 게 불가피하다. 규제 범위가 반도체에서 첨단 산업 전반으로 넓어지는 데다, 규제 강도 역시 수출규제에서 '투자 금지'로 더욱 세지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중국 첨단 산업계가 고사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현행 수출규제만으로도 중국 반도체 산업계가 휘청이는 상황인데, 이번 조치는 아예 첨단 산업 전반의 돈줄을 차단하는 효과가 있는 탓이다. 중국 정찰풍선 이슈로 대립하고 있는 미국과 중국의 관계 역시 더 악화될 수밖에 없다.
미국 동맹국들도 새 규제 대상과 내용에 주목하고 있다. 반도체 수출규제처럼 미국이 새 규제 준수를 동맹국에 요청할 수도 있다는 이유에서다. WSJ는 미국이 대(對)중국 투자 제한에 대한 지원을 끌어내기 위해 주요 7개국(G7)을 비롯, 동맹들에 손을 내밀고 있다고 전했다.
특히 한국으로선 운신의 폭이 더 좁아질 수 있다. 한국은 네덜란드나 일본 등 다른 미국의 동맹국과 달리, 아직 반도체 수출규제 참여를 공식화하지 않고 있다. 반면 EU는 이미 미국과 논의를 시작한 것으로 전해졌다. EU 관계자는 "미국의 해외 투자 규제와 관련해 미국과 대화가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