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생 말하기 전에... '진짜 엄마'의 삶 얼마나 아나요?

입력
2023.03.08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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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시각으로 '엄마' 조명하는 책 출간 봇물


지난해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은 0.78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낮다. 국가경쟁력 약화, 생산가능인구 급감 등 경제 사회적 관점에서 저출생 현상을 우려하는 분석은 넘쳐나지만 정작 아이를 낳고 기르는 '엄마'의 삶에 대한 관심은 미약하다. 자신의 삶을 직접 말하고 재해석하는 엄마들의 책이 주목받는 이유다.

① 엄마들이 보고 쓴 '엄마 영화' 이야기

"약함과 강함이 공존하는, 역설로 가득한 엄마의 삶을 인정하면서, 그리고 과거의 나와 오늘의 나를 보듬어 안으면서, 엄마는 강하다는 말을 이제 제대로 쓰고 싶다. 아무도 강요하거나 협박하지 않은 온전한 내 목소리로.(94, 95쪽)"

엄마들은 대표적인 '시간 빈곤자'다. 전업주부건 워킹맘이건 끝이 없는 가사노동과 돌봄노동을 하다 보면 엄마들의 하루는 신기루처럼 사라진다. 마음 편히 씻을 틈도 없는 엄마 26명이 아이들을 재우고 난 밤 10시에 모니터 앞에 앉아 영화 이야기를 하고 합평한 에세이집 '우리 같이 볼래요(이매진 발행)'가 출간됐다. 기혼 페미니스트 모임 '부너미'가 기획했다. 저자들은 '82년생 김지영' '우리의 20세기' 등 이른바 엄마 영화를 감상한 뒤 결혼 제도와 동등한 가사 분담, 성평등 육아, 출산 뒤 신체 변화 등 '엄마'로 살면서 직면하게 되는 문제에 대한 감정을 털어놓는다. 선정된 영화 26편은 엄마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영화가 대부분이다. 이들은 2021년 내내 1, 2주마다 비대면으로 만나 생각을 나누거나 글을 썼다. 텅 빈 문서 작성 프로그램 화면의 커서를 옮기기까지 몇 번의 분유를 아이에게 먹이고 기저귀를 갈아야 했는지, 그 시간의 노고가 고스란히 느껴진다.


② 엄마이기 전에 한 '인간'으로 바라보는 일

'엄마'도 태어날 때부터 엄마는 아니었다. 책 '나는 결코 어머니가 없었다(휴머니스트 발행)'는 '엄마'라는 단어에 갇힌 한 인간의 삶을 다시 소환하는 책이다.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개의 죽음' 등을 쓴 논픽션 작가 하재영(44)씨는 2년 전부터 엄마 고선희(68)씨를 인터뷰하며 듣고 또 들었다. 책은 '다음 세대 여성'인 딸의 관점에서 '개인 여성'인 엄마의 삶에 각주를 달아 재해석하는 취지로 기획됐다.

어린 시절 엄마는 책 읽기를 좋아하는 학생이었다. 괴테, 헤르만 헤세, 박경리 등 문학 작품을 탐독하고 1970년대에 역사교육학을 전공하는 대학생이 된다. 직업을 가질 새 없이 곧바로 맞선을 보고 결혼했고, 시집살이를 하며 주부와 엄마로 살던 고씨는 결혼 45년 후 이렇게 말한다. "인생에서 가장 좋았던 시기를 꼽으라면 그때인 것 같아. 학생이었던 시절, 누구의 아내도 며느리도 엄마도 아니었던 시절, 내가 그저 나였던 시절."

책은 '엄마의 구술-딸의 해석'의 형식과 연관 여성학 도서를 적절하게 인용한다. 그 자체로 한 편의 완성된 '페미니즘적 맥락'을 담은 사회비평서다. "내가 엄마에게 주고 싶었던 것은 엄마에 대한 '책'이 아니었다. '나 자신으로 살지 못했다'라고 말하는 엄마가 자기 삶의 저자가 되는 사건이었다." 엄마의 '필경사'를 자처한 저자의 말이다.


③ 나를 잃지 않고 엄마가 되는 법

"어쩌면 난 아이들을 키우는 데 너무 많은 걸 투자했는지도 모른다. 내가 투자한 건 나 자신이었다."

영화 '헤어질 결심' '아가씨' '친절한 금자씨' 등의 각본을 쓴 정서경 작가도 '엄마'다. '일하는 엄마'들의 에세이를 모은 책 '돌봄과 작업(돌고래 발행)'에는 정 작가 등 엄마 11명이 돌봄과 작업을 해 나가는 삶을 진솔하고 용기 있게 말한다.

책은 아이를 돌보면서 작업을 할 때 효과적이거나 올바른 방식을 따지는 내용은 아니다. 과도한 양육지침을 소개해 엄마들에게 죄책감을 안겨주지도 않는다. 오히려 아이를 키우며 일을 하는 엄마들이 맞닥뜨릴 수 있는 다양한 변수 앞에서, 나름대로 최선의 선택을 하고 또 그 선택에 대해 책임을 지는 과정을 공유한다.

책을 기획한 김희진 돌고래 대표는 "온갖 기준과 잣대, 판단과 평가, 때로는 혐오까지 난무하는 영역에서 양육자들이 개의치 않고 자신만의 방법을 찾아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기획했다"며 "양육자들의 다양한 선택을 존중하고 수용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지기 희망한다"고 말했다.


이혜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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