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죄책감 피할 '녹색 비행', 현재로선 불가능하다"

입력
2023.03.02 16:30
항공업계, SAF 등 대체 연료 도입 노력 중
영국 왕립협회 "항공유 대안은 없어" 결론
"비행기 많이 타면 세금 물려야" 목소리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억눌렸던 해외여행 수요가 폭발하며 너도나도 비행기에 몸을 싣는 요즘이다. 하지만 마냥 들뜨기엔 마음 한구석이 걸린다. 막대한 양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비행을 생각하면, '기후 악당' 대열에 합류하는 듯한 느낌도 들기 때문이다. 그래도 전 세계 항공업계가 '2025년까지 탄소 제로'를 한목소리로 외치고 있으니, 조만간 이런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과학계의 단호한 대답은 "아니요"이다.

영국 BBC방송과 가디언 등에 따르면, 영국 왕립협회는 지난달 28일(현지시간) 항공업계가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위해 쓰는 '지속가능한 항공연료(SAF·Sustainable Aviation Fuel)' 등 친환경 대체 연료를 살펴본 결과 "기존 화석연료의 대안은 없다"고 결론 내렸다. 이른바 '녹색 비행'은 현재로선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친환경 비행의 급선무는 탄소 배출량이 많은 항공유를 대체할 연료를 찾는 일이다. 현재 검토되는 건 △농작물로 만든 바이오연료(SAF) △녹색 수소 △암모니아 △합성연료(efuels), 이렇게 네 가지다.

항공업계가 가장 적극적으로 도입에 나서며 대세로 떠오른 연료는 SAF다. 기존 화석연료에 비해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약 80%나 적다. 유럽연합(EU)은 올해까지 역내 모든 항공사를 상대로 SAF 혼용을 의무화하는 계획도 세웠다. 그러나 SAF를 영국 항공산업에 100% 공급하려면, 영국 전체 농지의 절반이 필요하다는 게 문제다. 사탕수수·옥수수의 잔존물, 폐식용유 등이 원료인 탓이다. 왕립학회는 "식량 공급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친환경 녹색 수소는 '시기상조'다. 지금은 수소에서 얻는 에너지보다 생산에 들어가는 전력 소비량이 큰 데다, 수소 항공기도 개발 단계다. 암모니아와 합성연료도 사정은 비슷하다. 성공적인 대체 연료 개발·도입을 위해선 결국 비행기, 공항도 전부 뜯어고쳐야 할 것이라고 왕립협회는 보고서에서 짚었다. 그러면서 "모든 대체 연료에는 장점과 문제점이 함께 있다"며 "탈탄소화 항공의 간단한 답은 하나도 없다는 것이 분명하다"고 단언했다.

이처럼 '녹색 비행'은 아직 갈 길이 먼 게 현실이다. 그런데도 세계 항공업계는 앞다퉈 친환경을 앞세운 광고로 소비자의 눈을 가린다. 영국의 상업광고 규제기관 광고표준위원회(ASA)도 이를 '그린워싱(위장환경주의)'이라며 제재에 나섰다.

ASA는 1일 "세계를 잇는 일. 미래를 지키는 일"이라는 문구를 쓴 독일 항공사 루프트한자의 광고를 금지했다. 항공사가 '중대한' 환경보호 조치를 이미 취했다고 소비자들이 받아들일 수 있고, "항공업계는 친환경을 실현할 기술이 없다"는 게 ASA의 판단이다. 앞서 ASA는 2020년에도 유럽 저비용 항공사 라이언에어의 광고를 비슷한 이유로 금지했다.

환경단체에서는 비행기를 '덜 타도록' 각국 정부가 유도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본다. 기후 자선단체 '파서블'의 레오 머레이는 "현대인의 삶이 환경에 미치는 피해를 쉽게 바로잡을 기술은 드물다"며 "비행기를 많이 타는 탑승자에게 세금을 물려야 한다"고 말했다. 영국에서는 15%의 인구가 전체 항공편 70%를 이용하고, 국민 절반은 1년 내내 비행기를 타지 않는 만큼 일정한 제한이 필요하다는 취지다. 프랑스 등 유럽의 일부 나라는 단거리 여객기 운항을 아예 중단하기도 했다.

전혼잎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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