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글자 그대로, 오직 이 정원을 따라서 쓰인 글이다. 어느 날 내가 우연히 도착하게 된, 투야나무 울타리 뒤편의 보이지 않는 정원. 거기서부터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
청보랏빛 수레국화와 양귀비가 만발한 푸른 들판 한가운데서 코끝에 와닿는 들풀 향취. 아침 이슬 맺힌 낙엽이 뒹구는 흙의 축축한 냄새. 여름철 검은 산딸기의 탱탱한 과육이 빚어내는 달큼한 향. 소금과 효모를 넣은 밀가루 반죽이 고소하게 부풀어 오를 때의 따스한 온기. 소설가 배수아의 산문집 '작별들 순간들'은 페이지마다 다채롭게 오감을 자극한다.
이 글이 쓰인 곳은 독일 베를린 인근 한 시골 마을의 정원 딸린 오두막. 지난 15년간 독일과 한국을 오가며 글을 써온 저자는 '베를린 서가의 주인'이라 불리는 인물과 함께 철저히 외부와 단절된 공간에서 읽고, 쓰고, 산책하고, 여행하고, 호수에서 수영하고, 모닥불을 쬐며 대화한다. 펌프로 물을 긷고, 장작불을 피우며, 빵을 구우면서 '최소한의 삶'을 영위하면서 봄, 여름, 가을 세 계절을 보낸다.
그렇다고 목가적인 삶을 그리는 '전원문학'으로 분류될 글은 아니다. 특정 인물이나 사건을 도드라지게 소환하지 않지만, '읽고 쓰는 삶'에 대한 치열한 사유가 촘촘하게 녹아 있다. "연속성과 이야기의 문법을 피해 가기를 원하며, 구조와 플롯의 글을 쓰고 싶지 않다"는 저자는 책의 말미에 이르러 '읽기에 대하여' 썼다고 밝힌다. 하지만 책 어디에서도 줄거리나 등장인물 같은 독서 관련 정보를 찾을 수 없다.
독자는 그저 질서 없이 무계획적으로 배치된 문장의 호흡을 따라가는 수밖에 없다. 시각과 후각, 그리고 촉각의 단어가 머무르는 몽환적 순간을 음미하면서. 그리하여 배수아만의 매혹적이고 독특한 글쓰기가 완성된다. "내 글은 아무도 모르게 달아나는 중이다. '글자 그대로 읽히는 것'으로부터(49쪽)"라는 말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