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라서 안 낳는 게 아니다

입력
2023.02.27 04:30
26면

차일드 프리(Child-free). 자발적 무자녀 상태를 가리키는 말로, 풀어 쓰자면 '아이를 낳거나 기르지 않기로 적극적으로 결정한'이라는 뜻이다. 유럽에서 197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사용한 표현인데, '프리'에 "아이가 없어서 자유롭다"는 뉘앙스가 담겼다.

'차일드 프리를 찬양하는 사람들'은 영국 BBC방송의 최근 기사 제목이다. '아이 안 낳은 죄인'이라는 낙인을 거부하고 당당하게 사는 남성과 여성, 부부와 커플의 다양한 사례를 다뤘다. 차일드 프리를 택하는 사람이 많다는 건 구문이지만, 그 선택의 경험을 공유하고 서로를 지지하는 '운동'이 일어난 건 몇 년 사이의 현상이라고 BBC는 소개했다.

'운동'까지 해야 하는 건 차일드 프리가 유럽에서도 지탄의 대상에서 벗어나지 못한 탓이다. "넌 이기적이야. 늙어도 돌봐 줄 사람이 없을 거야. 혼자 외롭게 죽어야 할 거야. 진정한 사랑을 맛보지 못할 거야. 결국 후회할 거야…" BBC 기사에 나오는 걱정을 가장한 비난의 말들인데, 레퍼토리가 한국과 똑같다.

아마도 만국 공통일 출산 촉구 레퍼토리는 자발적 무자녀 결정이 결함 혹은 결핍의 소치라는 확신에서 출발한다. 의지, 분별력, 모성애, 부성애, 인류애, 애국심, 희생정신, 종족 번식 욕구 등등이 부족해서 내린 오판이므로 바로잡아 줘야겠다는 사명감을 느낀 나머지 타인의 가장 내밀한 영역에 빨간 펜을 들이댄다.

그러나 요즘의 차일드 프리는 뭘 잘 몰라서가 아니라 너무 잘 알아서 도달하는 결론이다. 무자식이 상팔자이긴커녕 무자식이어야 중간이라도 가는 힘겨운 세상이라는 것, 내가 당한 계급적 설움이 아이에게 상속되는 불평등한 세상이라는 것, 기후변화, 전쟁, 사회갈등으로 언제 망할지 모르는 암울한 세상이라는 것 말이다.

차일드 프리가 보편이 될 지경인 한국의 지난해 합계출산율은 세계 최저인 0.78명이었다. 적정 인구와 출생률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지만, 출생률을 올리는 게 맞다면, 치열한 고민 끝에 무자녀로 살기로 결심한 사람들을 탓해 봐야 지금처럼 입만 아플 것이다.

근본적 해법은 이리저리 다 재 보고도 유자녀로 살기가 괜찮은 선택이 되게 하는 것이다. 육아에 필요한 돈, 집, 시간, 노동력, 사회안전망을 안정적으로 제공하고, 좋은 공교육과 여성이 손해 보지 않는 양육환경을 보장하며, 아이가 살아갈 미래를 아름답게 만들어야 하는데, 이 모든 것을 동시에 해내야 유효한 최고난도의 해법이다.

보다 쉬우면서 선진국들이 효과를 입증했음에도 한국이 거부하는 해법도 있다. '유자녀로 살 자격 요건을 넓히는 것'이다. 한국에서 아이를 낳거나 기를 의무와 권리는 남성 1명과 여성 1명으로 구성된 법적 부부만의 것이다. 이른바 '정상 가족' 결성을 출산의 선결 조건으로 못 박고 비혼자와 동성 커플 등의 유자녀 되기를 막는다.

'태어난 사람들을 소중하게 지키는 것'은 한국이 인정하지 않는 해법이다. 열심히 낳고 기른 내 아이가 '김용균들', '다음 소희들', '문동은들'이 될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차일드 프리를 최종 결심하게 한 이유라는 건 언론과 연구자들이 수집한 청년들의 증언에 수없이 녹아 있다.

인구가 걱정이라면서 어떤 생명들은 인구 통계에 잡힐 자격이 없다고 배제하고, 어떤 생명들은 꺼지는 이유를 알면서도 끊임없이 꺼지도록 내버려 둔다. 윤석열 정부가 다음 달 저출생 종합대책을 내놓기 전에 그 모순부터 생각해 봤으면 한다.


최문선 국제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