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침략은 사람을 죽이는 것이기도 하지만, 넓게 보면 '생태학살(Ecocide)'이다."
루슬란 스트릴레츠 우크라이나 환경부 장관은 22일(현지시간) 키이우 환경부 청사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의 현재뿐 아니라 인류의 미래를 파괴하고 있다는 뜻이다.
우크라이나 환경부가 최근 발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러시아 침공으로 인한 환경 파괴 손실액은 파악된 것만 514억 달러(약 66조 원)에 달한다. 대기 피해가 가장 심각하다. 스트릴레츠 장관은 "피해의 60%가 대기 분야에서 발생했다"며 "미사일과 탱크 등이 시시각각 대기를 오염시키고, 방화로 인한 대기 오염도 심각하다"고 말했다.
스트릴레츠 장관은 "우크라이나 영토의 30%가 황폐화됐다"고 했다. "무기에서 흘러나온 화학 물질과 기름 등이 땅에 스며들었고, 버려진 군 장비에서 나온 유독 물질도 대지를 오염시켰다"고 말했다.
러시아군이 심어 둔 지뢰 때문에 환경 복구 작업에 나설 수도 없다. 스트릴레츠 장관은 "약 800km² 면적을 탐색해 약 321만 개의 지뢰를 무력화시켰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며 "우크라이나는 세계에서 가장 큰 지뢰밭이 됐다"고 했다. 이어 "전쟁이 끝난 뒤 지뢰를 전부 제거하는 데 5년 이상이 걸릴 것"이라고 덧붙였다.
스트릴레츠 장관은 우크라이나 헤르손주 카오우카시 저수지의 물을 러시아군이 일부러 빼고 있는 것에 우려를 표했다. "정상 수위는 16m인데, 현재 수위는 13.8m"라며 "13.7m 이하로 떨어지면 30만 명이, 13.2m 이하로 떨어지면 100만 명이 식수 없이 살게 된다"고 했다.
그는 "수위가 13m까지 내려가면 유럽 최대 원자력발전소인 자포리자 원자력발전소에 냉각용수 공급이 어려워져 전 세계적 핵 재앙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전쟁 때문에 멸종 위기에 처한 동식물도 약 1,350종이다. 철새가 돌아오지 않고, 이유 없이 죽은 채 발견되는 생물도 많다. 스트릴레츠 장관은 "우크라이나 흑해 연안에서 지난해 떼죽음당한 돌고래는 러시아군이 저지르는 생태 파괴의 극명한 사례"라고 했다. '러시아 해군이 사용하는 수중 음파 탐지기 때문에 돌고래의 음파 감지 기능이 떨어지면서 돌고래가 방향 감각을 상실해 바위 등으로 돌진해 죽었다'는 게 우크라이나 정부가 지난해 말 낸 결론이다.
스트릴레츠 장관은 "2,300건 이상의 환경 피해 사례가 파악됐고, 1,163건은 우크라이나 수사기관으로 넘어갔다"고 했다. 이는 빙산의 일각이다. 러시아 점령지는 조사하지 못했고, 전쟁이 언제 끝날 지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전쟁으로 인한 환경파괴가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선 조사를 시작하지도 못했다.
생태학살은 우크라이나 국경 안에서만 일어나는 게 아니다. 오염된 공기와 물은 지구 전체로 퍼진다. 국제사회가 나서야 하는 이유다.
스트릴레츠 장관은 "일본을 비롯한 많은 국가들과 환경 분야 협력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는데, 아쉽게도 한국과는 관련 논의를 구체화하지 못했다"고 했다. 이어 "우크라이나는 벌목, 목재 가공 등 분야의 현대적 기술을 도입하는 것에 관심이 크고, 한국이 뛰어난 기술력과 잠재력을 갖고 있다고 안다"고 말했다. 또 "오늘 인터뷰를 통해 한국과 우크라이나가 대화할 기회가 커질 것이라 확신한다"고 기대했다.
우크라이나는 재건 사업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의 기후·환경 기준을 맞추기 위한 작업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유럽연합(EU) 가입 기준을 충족하기 위해서다. 스트릴레츠 장관은 "'플라스틱 제품 제한' 관련 법을 만들었고, 올해 안에 환경 보호 관련 법안 10개 이상을 의회에서 통과시킬 계획"이라고 말했다.
스트릴레츠 장관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환경 보호를 늘 강조한다"면서 "대통령이 주관하는 국가안전보장회의의 결정 내용 중엔 환경 보호 관련 사안이 가장 많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