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가서 한 잔 더"는 옛말… 고물가·택시비 인상에 빨라진 '귀가 시계'

입력
2023.02.24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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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등 번화가 밤 10시 손님 '뚝'
'택시 대란' 옛말… '빈 택시' 넘쳐나

“오후 10시만 되면 손님들이 알아서 일어서는 분위기입니다. 2차 손님도 확 줄었고요.”

서울 여의도에서 횟집을 운영하는 A(49)씨는 0시까지던 영업시간을 최근 오후 10시로 단축했다. 이 시간 이후엔 파리만 날려 인건비라도 아껴야겠다고 결심한 것이다. A씨는 22일 “감염병 유행이 잠잠해지면서 장사 좀 하나 싶더니 도루묵이 돼버렸다. 고물가 여파가 이토록 클지 몰랐다”고 한숨을 쉬었다.

거리두기 해제로 매출 정상화를 기대했던 상인들의 희망이 금세 꺾였다. 손님들이 밤이 깊어진다 싶으면 죄다 자리를 털고 일어나니 “거리두기 전과 달라진 게 없다”는 아우성이 빗발친다. 심야영업을 중단하는 식당과 술집도 속출하고 있다. 원인은 단연 외식 물가부터 공공요금까지 안 오른 게 없는 고물가에 있다. 여기에 이달 1일부터 대폭 인상된 심야택시 요금도 소비 침체를 부채질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날 오후 11시 10분쯤 서울 합정역 인근 한 술집. 4인석 테이블 7개 가운데 한 테이블에서만 손님이 보였다. 이곳은 오전 5시까지 영업을 한다. 원래 오후 10시~오전 2시 사이가 가장 붐비는 시간대지만 한산하기만 했다. 직원 서모(33)씨는 “테이블의 절반은 차야 그나마 운영이 되는데 손님이 눈에 띄게 줄었다”며 “먹고 입고 타고, 어느 것 하나 비싸지 않은 게 없으니 술 마시러 나오고 싶겠느냐”고 푸념했다. 인근 일본식 선술집 직원 김모(24)씨도 “0시 전에는 손님들이 다 빠진다”고 거들었다.

시민들 반응도 비슷했다. 서울 여의도 한 양갈빗집에서 만난 대기업 직원 조모(40)씨는 “지난달만 해도 심야 택시비가 1만5,000원 정도 나왔는데, 이젠 2만 원을 훌쩍 넘긴다”며 “다른 지출까지 늘어 택시비라도 아낄 요량으로 술자리는 가급적 1차에서 끝낸다”고 말했다.

지난해 일제히 올랐던 소주ㆍ맥주 가격이 또 오른다는 소식도 상인들에게는 악재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4월부터 맥주에 붙는 세금이 작년보다 L당 30.5원 인상된다. 소주는 주세가 오르지 않지만 원가 부담이 커졌다. 업계에선 어떻게든 소주ㆍ맥주 모두 출고가가 더 비싸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시민 김지유(24)씨는 “소주 1병이 6,000원으로 오르면 차라리 좀 더 보태 집에서 와인을 먹는 게 나을 것 같다”고 씁쓸해했다.

‘택시 대란’도 옛말이 됐다. 요금 인상 탓인지 번화가 주변에서도 손님을 찾아 배회하는 빈 택시가 심심찮게 목격됐다. 이날 오후 10시 30분부터 합정역 사거리를 지나는 택시 100대를 직접 세어보니 69대가 승객 없이 운행했다. 택시기사 권모(74)씨는 “손님이 절반은 족히 줄었다. 차라리 요금을 올리지 말았어야 했나 싶을 정도로 위기감이 크다”고 걱정했다.

김도형 기자
나광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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