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양극화가 이슈다. 정치갈등이 문제로 제기된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그러나 2020년 21대 총선과 정의당 지지율의 하락, 2022년 20대 대선과 국민의힘·국민의당 합당 등 양당 체제의 강화와 제3 정치 세력이 부재한 정치권, 그리고 네거티브 정치와 진영논리에 따른 팬덤 정치가 맞물려 갈등의 정도가 격화됐다. 대화, 소통, 협치, 합의는 설 자리가 없다.
내년에는 22대 총선이다. 선거제도 개혁이 이 문제를 해결할 실마리가 될 수 있을까? 한국리서치 '여론 속의 여론'팀은 지난 1월 13일~16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정치갈등과 선거제도 인식조사를 진행했다. 이를 통해 정치 양극화의 실태와 선거제도 인식의 현주소를 살펴보고자 한다.
본 조사에서는 정치 양극화를 정당별 지지도의 관점에서 파악했다. 우선 전체 응답자를 더불어민주당, 국민의힘 등 지지 정당별로 나누고 응답자가 각 정당을 어느 정도 지지 또는 반대하는지를 11점 척도(-5점 ‘매우 반대’, 0점 ‘중립’, +5점 ‘매우 지지’)로 조사하였다. 그 결과 더불어민주당, 국민의힘 양당의 지지도는 상당히 유사한 모습을 보였다. 더불어민주당 지지층 가운데 더불어민주당을 “매우 지지”하는 사람은 29%, 국민의힘을 “매우 반대”하는 사람은 65%였다. 국민의힘 지지층 중에서는 27%가 국민의힘을 “매우 지지”하고, 62%가 더불어민주당을 “매우 반대”했다. 즉,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에 대해서는 지지도가 강하지 않지만, 상대 당에 대해서는 반대하는 정도가 매우 강하다. “우리 편이 좋다”보다 “상대편이 싫다”라는 네거티브 정서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각 정당별 지지도 평균도 마찬가지다. 더불어민주당 지지층의 더불어민주당 지지도는 3.0점, 국민의힘 지지도는 -3.8점이고, 국민의힘 지지층의 국민의힘 지지도는 2.8점, 더불어민주당 지지도는 -3.7점이다.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에 대한 지지도 평균에 비해 상대 당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강하다. 특히, 국민의힘 지지층의 경우 정의당(-2.3점)보다 더불어민주당(-3.7점)을 반대하는 정도가 더 높게 나타나는 것도 특징이다. 또한, 양당의 지지도는 모든 정당 간 관계 중 가장 강한 음(-)의 상관성을 보인다. 어느 한쪽을 지지하는 정도가 높을수록 다른 한쪽을 반대하는 정도가 높은 반비례 관계에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치적 반감은 어떤 대상을 향하고 있을까? 주요 집단에 대한 정치적 반감 정도를 물어본 결과, 나와 정치적 의견이 다른 인터넷 정치글 작성자와 댓글러(64%), 정치 시위·집회 참여자(61%), 유튜버·SNS 인플루언서 등 정치 콘텐츠 크리에이터(61%), 정치인(61%) 순으로 반감이 심하다고 응답했다. 언론사·논설위원·기자에 대한 반감(53%)은 상대적으로 심하지 않은 편이다. 현시점에서는 레거시 미디어 영역의 행위자보다 온라인, 뉴미디어 행위자들에 대해 정치적 반감이 집중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포지티브한 비전 경쟁 대신 상대 당에 대한 네거티브 동원을 우선하는 정치 환경이 조성되어 있는 셈이다.
나아가 정치갈등의 원인으로는 극단적 진영 논리에 따른 정치극단주의(45%)와 대통령의 리더십 부재(42%) 등이 지적된다. 그러나 지지 정당별로 파악하면 결과는 사뭇 다르다. 더불어민주당 지지층은 대통령의 리더십 부재(69%)를, 국민의힘 지지층은 정치극단주의(66%)와 강성 지지층의 정치 선동(55%)을 지적한다. 여당 지지층과 야당 지지층의 원인 진단이 서로 다른 것이다. 이대로라면 네거티브 정치와 갈등은 쉽게 해결되기 어려울 것이며, 따라서 내년 총선에서도 이에 따른 부작용이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정치 양극화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양극화 원인에 대한 인식 차를 좁히는 것에서부터 출발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최근 정치권에 양극화 해소를 위한 선거제도 개혁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다. 이에 대한 여론은 어떠할까? 우선 현행 지역구 선거 방식에 대한 문제 인식은 반반이다. 소선거구제가 문제가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50%, 없다고 응답한 비율도 50%로 나타났다. 이는 지지 정당별로도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소선거구제의 문제점도 지역주의·지역몰표 33%, 불공정한 공천 심사 25%, 승자독식 정치 18% 순으로 나타났다. 현행 제도의 문제점에 대한 여론도 엇갈리고, 정치 양극화보다는 한국 정치의 고질적인 지역주의와 공천 비리를 문제점으로 보고 있다는 점에서 정치권에서의 논의와 여론 사이에 괴리가 확인된다.
정치 양극화 해소방안으로 제시되고 있는 중대선거구제는 찬성 37%, 반대 36%, 잘 모르겠다 27%로 팽팽하다. 국민의힘 지지층에서 찬성이 더 높고 더불어민주당 지지층에서 반대가 더 높긴 하지만 두 지지층 간 차이가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다. 전체적으로 봤을 때 현행 소선거구제의 문제점에 대해서도 인식이 엇갈리고, 대안으로 제기되는 중대선거구제에 대해서도 국민들의 폭넓은 공감대를 얻지 못한 것이다.
또 다른 대안으로 제시되는 비례대표제에 대해서는 대안보다는 문제로 인식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현행 비례대표 선거 방식에 문제가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67%, 없다고 응답한 비율은 33%다. 무엇이 문제라는 걸까? 43%는 공천 비리를, 25%는 원하는 인물에게 투표할 수 없는 문제를 지적한다. 즉, 정당 내부 심사를 통해 당선 순위가 매겨지는 폐쇄형 정당명부제의 부작용을 더 크게 인식하고 있다. 소수 정당의 진입 장벽 문제(13%), 정당득표율과 의석수의 불비례성 문제(10%)는 그다음이다.
이에 따라 현행 비례대표제의 대안으로서 논의되고 있는 개방형 정당명부제와 관련 “비례대표의 경우, 유권자가 정당만이 아닌 후보자까지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라는 주장에 전체 응답자의 76%가 동의했다. 반면 “지역구 의석이 많은 정당은 비례대표 의석을 더 적게 가져가야 한다”는 연동성에 대한 동의 비율은 54%로 상대적으로 높지 않은 편이다. 2020년 총선에서 실시된 현행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다당제를 실현하지 못했고 오히려 더불어시민당, 미래한국당 등의 위성정당을 창당하며 폐단을 낳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비례대표 의원 정수 증가에 대한 여론도 부정적이다. 전체 응답자의 47%는 현행 47명의 비례대표 의원 정수가 “많다”라고 답했으며 “적다”라고 응답한 비율은 17%에 불과했다. 지지 정당별로 차이가 있기는 하나 “적다”라는 응답 비율이 낮은 것은 마찬가지다. 또한 비례대표 의원이 많다는 응답자 중 63%는 지역구와 비례대표를 모두 줄여야 한다고 응답했으며 비례대표 의원이 적다는 응답자 중 20%만이 지역구와 비례대표를 모두 늘려야 한다고 응답했다. 대표성과 비례성을 강화하려면 국회의원 수의 증가도 고려해야 하는데 이는 공감대를 얻기 어려운 상황이다.
선거제도 개혁안은 정치 양극화처럼 지지 정당별로 의견이 엇갈리지는 않으나 사회적 합의와 공감대는 부족한 상태라고 볼 수 있다. 정치갈등에 대한 심각성 인식이 높은 만큼 정치개혁의 필요성 자체에 대해서는 다수의 국민이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 논의되고 있는 구체적인 개혁안들에 대해서는 아직 논란의 여지가 있으며 풀어야 할 숙제 또한 만만치 않다. 중대선거구제의 경우 복수공천과 선거구 획정 기준, 비례대표제의 경우 후보자 공천과 위성정당 문제 등에 대한 보다 세밀한 제도의 설계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지금은 국민들의 의사를 물어볼 정당별 의견 수렴안조차 없다.
나아가 유념할 점은 제도가 바뀐다고 모든 것이 해결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선의의 개혁이 개악으로 귀결되는 것을 우리는 종종 봐왔기 때문이다. 선거제도 개혁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지금 우리 사회에 만연한 네거티브 정치문화와 극단주의의 완화다. 정치 양극화로 지친 국민들이 또한 원하는 것은 공동체 회복을 위한 책임 있는 정부와 국회의 모습일 것이다.
※ 이번 여론조사는 한국리서치가 자체 기획해 전국 만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인터넷 웹조사 방식으로 진행했다. 조사기간은 2023년 1월 13일~16일이며,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