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만의 음악에 투영된 상반된 이중성

입력
2023.02.23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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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주의 작곡가 로베르트 슈만(Robert Schumann)은 작곡뿐만 아니라 음악잡지를 손수 창간할 정도로 문학적인 소양도 갖춘 흔치 않은 음악가였다. 슈만에게 작곡은 작문처럼 책상 곁에서 펜으로 기록하며 얻는 지적 결실과 같았다. 악기 앞에 앉아 귀에 듣기 좋은 감미로운 선율을 찾는 것과는 거리를 두었는데, 건반 위 손가락보다는 머리가 원하는 것을 작곡해야 새롭고 대담한 선율을 찾을 수 있다고 믿을 정도였다. 때때로 청각적 상상력보다는 문학적 상상력이 더 큰 힘을 발휘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다른 작곡가들보다 문학적 배경이 튼튼했는데, 서점에서 일했던 아버지 덕택에 어린 시절부터 책들에 둘러싸여 국경 불문하고 다양한 문학 작품을 섭렵한 덕택이었다.

슈만의 음악세계엔 서로 상반된 이중적 자아가 서로 맞물려 융해되어 있다. 오선지에 음표를 새겨 작곡을 할 때나 잡지에 기고를 할 때마다 가공의 이름을 즐겨 표기했는데, 혈기 넘치고 진취적이며 행동하는 인간을 표방한 경우 '플로레스탄(Florestan)'을 새겨 넣었고, 진지하고 내향적이며 시적인 몽상가를 투영할 땐 '에우세비우스(Eusebius)'라 정체성을 밝혔다.

슈만의 유일한 피아노 협주곡에서도 이 다면적 자아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 1악장 첫머리부터 짧게 압축된 상반된 이중성이 드러나는데 극적인 리듬으로 강력한 포효를 내뱉으며 하행하는 피아노 솔로는 플로레스탄을 떠올리게 하고, 오보에가 연주하는 서정적이며 애틋한 선율은 에우세비우스와 잇닿아 있다. 협주곡의 첫 악장인 만큼 플로레스탄스러운 동적인 전형성이 자유분방하게 펼쳐지지만, 제시부와 발전부 사이 오묘하게 배치된 서정적 장면도 이 협주곡의 백미라 할 수 있다. 안단테로 속도를 늦춘 Ab장조의 서정성은 왁자지껄한 군중 속의 고립처럼 에우세비우스의 내향성을 되돌아보게 하는 것이다.

2번째 악장은 전후 두 개의 거대한 악장을 연결하는 인테르메조의 짧은 간주로 기능한다. 군더더기 없이 간결한 주제는 사실 1악장 주제에 장조의 옷을 입혀 변형한 것이어서 악장 간 유기적 연결성을 발견케 한다. 첼로와 피아노가 함께 대화를 나누는 중간 부분에선 다시 에우세비우스의 서정성이 물결에 일렁이듯 촉촉하게 펼쳐진다.

3악장은 찬란한 햇빛처럼 생기가 넘치는 전형적인 플로레스탄이 악상을 주도한다. 이때 피아니스트에겐 만만치 않은 기술적 어려움이 발생하는데 3도 음정을 사슬처럼 나열하며 건반의 전 영역을 오르내리는 아르페지오 음형이 눈부시게 펼쳐지는 까닭이다. 단단한 터치와 명료한 음색 없이는 정복하기 힘든 난해한 장면이 아닐 수 없다. 마지막 악장의 마무리 장면은 여타 협주곡과 구별될 만큼 독특하다. 형식상으론 코다가 내용상으론 클라이맥스와 중첩되어 숨 가쁜 질주가 3분이나 이어진다.

플로레스탄과 에우세비우스로 서로 상반된 자아를 꾸준히 투영했던 슈만은 이러한 개인성에 그치지 않고 공동체성으로 그 가치를 진화시켜 흥미롭다. 슈만은 다비드 동맹이란 가상의 단체를 결성하며 음악의 진정한 가치를 설파하기 위해 노력했었다. 다비드 동맹이 맞서 싸우는 무리는 필리스틴(Philistins)으로 구약성경에서 골리앗이 속한 블레셋 군대를 의미한다. 음악적으론 화려한 기교로 치장한 채 거대한 규모로 혹세무민하는 속물들을 지칭했다. 슈만이 보기에 이들은 그저 음악을 비싸게 팔아먹는 쇼맨십에 혈안이었다.

당대 사람들은 슈만과 리스트의 피아노 협주곡을 즐겨 비교하면서 다비드의 대적 상대로 리스트를 꼽았다. 허장성세의 리스트와 달리 슈만이 피아노 협주곡에서 가장 공들인 지점은 피아노와 오케스트라의 관계에 있었다. 둘 사이는 무턱대고 대립하거나 한쪽에 치우쳐 종속되거나 따로따로 분리되지 않았다. 마치 예술가곡에서 성악가와 피아니스트의 관계처럼 서로 조화로운 동반자로 결속되었다. 이처럼 슈만의 음악에서 상이한 정체성과 문학적 상상력을 발견할 수 있다면 감상의 즐거움은 더욱 깊어질 것이다.

조은아 피아니스트·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