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아버지와 자전거를 찾다 만난, 참혹한 전쟁의 상흔들

입력
2023.02.24 04:30
15면
우밍이 장편소설 '도둑맞은 자전거'
2018년 대만 최초 맨부커상 후보에 오른 작품
자전거 매개로 동남아 휩쓴 2차 세계대전 조명
인간은 물론 全생태계의 고통 유기적으로 풀어

아버지가 사라졌다. 아홉 식구를 먹여 살리기 위해 운영해 온 양장점이 있던 상가 건물이 1992년 도시개발을 이유로 철거되기 시작한 다음 날이었다. 아버지의 자전거도 온데간데없었다. 20년이 흐른 어느 날 그 자전거를 다시 만났다. 아버지는 어디로 가고 자전거만 여기 남은 걸까.

대만 작가 우밍이(52)의 장편소설 '도둑맞은 자전거'는 주인공 '청'이 자전거를 매개로 실종된 아버지의 행방을 찾는 과정을 따라간다. 자전거의 여정을 추적하며 만난 인물들은 제각기 위치에서 일치시대(일본의 대만 지배 시기)와 2차 세계대전을 겪었다. 그들의 목소리가 더해질수록 주인공은 아버지에게 한 걸음씩 더 다가간다. 대만 문학이지만 일제강점기와 전쟁, 유교문화권 등 비슷한 역사를 가졌기에 한국 독자들이 몰입하기 어렵지 않다.

거대한 역사의 흐름 속 개인의 고통을 입체적으로 그려낸 이 소설은 대만 최초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후보작(2018)이다. 당시 작가가 자신의 국적을 '대만'에서 '대만, 중국'으로 바꿔 표기한 주최 측에 이의를 제기하고 '대만'으로 되돌린 일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자전거라는 일상적 소재 뒤에는 '전쟁'이라는 무거운 주제가 있다. 자전거와 인연을 맺은 인물들은 모두 전쟁의 광기에 온몸을 관통당한 이들이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전투기 공장의 소년공으로 일했던 '청'의 아버지는 평생 옛이야기를 하지 않고 입을 닫았다. "마치 인생을 누군가에게 팔아버려 과거의 모든 것과 무관한 사람"처럼. 아버지의 자전거를 갖고 있던 '압바스'의 아버지 '바쑤이'는 말레이반도 전장에 일본군 '은륜부대'로 참전한 사실을 평생 비밀에 부쳤다. 하지만 끝내 잊지도 이겨내지도 못한 기억은 고통스럽다. "뾰족한 가시 같은 것이 몸에 남아"있는 이들은 긴 시간이 지나도 뽑지 못한 마지막 한 가시를 결국 제 몸으로 찔러 넣고 만다.

군복을 입지 않은 이들에게도 그 시기는 고통이다. '청'의 어머니는 아버지의 죽음과 연관된 공습의 기억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사람이 "등잔불 꺼지듯이" 죽어가던 날들이다.

소설의 각별함은 애도와 연민의 시선이 인간을 넘어 동식물에게까지 향한다는 점에 있다. 전쟁에 휘말려 학살당한 말레이반도의 코끼리들, 연합군의 공습 반경이 타이완 섬에 가까워지자 '처리'된 타이베이 동물원의 동물들까지도. 9장(림보)은 아예 코끼리의 시점에서 전쟁과 인간을 서술한다. "언젠가는 인간도 알게 될 것이다. 코끼리도 자신들처럼 캄캄한 밤과 밀림, 우기를 알고 슬퍼할 줄도 안다는 것을."

소설의 주된 공간적 배경인 밀림은, 그 자체로서 여러 메시지를 대변한다. 불타는 밀림은 전쟁 파괴성의 단면이다. 말레이인들은 제2차 세계대전을 '숲을 죽인 전쟁'이라고 부른다. 밀림과 인간의 관계는 역사와 개인으로도 치환된다. "숲속에서 그는 들어갈 것인지 떠날 것인지조차 스스로 결정할 수 없었다. 숲은 한 시대와 같았다." 반(半)조난 상태를 표현한 이 대목은, 전쟁의 소용돌이에 끌려 들어간 개인을 연상시킨다.

메타픽션 형식은 소설을 풍부하게 만든다. "사실과 허구, 환상이 유기적으로 직조된 이야기"라는 옮긴이(허유영)의 분석처럼, 정제된 다채로운 이야기 조각들이 매끈하게 짜 맞춰져 있다. 소설가인 주인공이 말하는 작가론이나 예술론은 마치 작가의 말 같기도 하고, 우밍이의 전작 '수면의 항로'가 소재로 활용되기도 한다. 자전거산업과 기술, 역사를 주로 다루는 별장(別章)은 미시사를 따라가는 재미도 준다. 자전거와 인물들의 서사가 끊임없이 교차해 호흡이 끊기지 않는다.

후반부로 가면 아버지의 행방 자체보다 드러나지 않은 아버지의 삶에 주목하게 된다. 그렇게 소설은 슬픔과 눈물을 나누는 매개로 충분한 역할을 한다. 작가는 '작가의 말'을 통해 거기서 멈추지 않길 바라는 마음을 전한다. "그저 소리 없이, 힘겹게, 간절하고 또 고요하게 페달을 밟기만 하면 된다."

진달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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