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의 복수를 하겠다!" "독재자에게 죽음을!"
지난 16일(현지시간) 이란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인 호라산주(州) 마슈하드시(市). 반정부 시위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체포된 모하마드 메흐디 카라미(22)와 세예드 모하마드 호세이니(39)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지 40일째인 이날, 최고 지도자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84)를 성토하는 군중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마슈하드뿐이 아니다. 망자를 위한 이슬람 애도 기간 40일이 끝나는 이날 밤, 수도 테헤란부터 이스파한, 카라지 등 이란 주요 도시에선 반정부 집회가 동시다발로 벌어졌다. 최근 들어 최대 규모의 시위였다.
히잡을 느슨하게 썼다는 이유로 경찰에 잡혀가 숨진 마흐사 아미니(22)의 의문사가 촉발한 이란 반정부 시위는 벌써 5개월째다. 거센 불길은 잦아들었지만 화로 속 불씨는 여전히 살아 있다. 내부에서 움튼 시위의 기세는 국제 무대에서의 장외 투쟁으로 번져가는 모양새다.
지난 17~19일 열린 세계 최대 안보 분야 연례 국제회의인 뮌헨안보회의는 이란 당국 대신 반체제 인사들을 초청했다. 저명한 이란 여성인권운동가 마시 알리네자드, 1979년 이슬람혁명 직전까지 존속한 이란 팔레비 왕조의 마지막 왕자 레자 팔레비 등이다. 성직자의 통치를 끝장내고, 세속주의로 나아가야 한다는 게 이들의 공통된 목소리다. 이슬람 체제를 수호하는 이란 혁명수비대에 대한 테러단체 지정도 유럽연합(EU)에 촉구하고 있다.
알리네자드는 독일 뮌헨에서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을 만나 "진정한 전쟁광은 이란 국민을 상대로 전쟁을 벌인 이란의 이슬람 정권"이라며 "수백만 이란인의 요구인 혁명수비대를 테러리스트 명단에 올려 달라"고 밝혔다. "자유와 인권을 억압하는 가장 큰 도구를 제재해야 한다"는 이유다.
서방이 이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이기 시작한 것은 이란 내부에서 움튼 반정부 시위 덕분이다. 이번 반정부 시위가 이슬람혁명 이후 신정국가 이란에 대한 가장 심각한 도전이었다는 데 이견은 없는 상황. 전국적 시위는 다소 둔화하고 있으나, 공고했던 이슬람 독재 정권에 균열을 내는 데엔 충분했다는 평가다.
레자 팔레비는 지난 18일 미국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와의 인터뷰에서 "이슬람 정권은 분열하고 있다"고 단언했다. 이어 "하메네이가 자신의 아들을 후계자로 세우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해 왔지만 일단 하메네이가 떠나면 (정권의 결속력을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이미 많은 균열이 있고, 특히 아직 노선을 정하지 못한 많은 수의 '회색층'이 있다"고 강조했다. 영국, 미국 등을 떠돌며 이란 정권 비판에 앞장섰던 그는 최근 이란 내 야권 인사들과 손잡고 '민주주의 이란'을 위한 선언문을 마련해 조만간 발표할 예정이다.
이란 내부에서도 시위의 열기가 식기는커녕, 바닥부터 부글부글 끓고 있다. 반정부 시위의 파도는 아미니가 숨진 다음 날인 지난해 9월 17일 그의 고향인 북서부 도시 사케즈에서 시작됐다. 이란 당국으로부터 혹독한 탄압을 받은 쿠르드족이 많이 사는 도시로, 아미니 역시 쿠르드족이었다.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WP)는 "이들은 화염병과 불태울 타이어를 준비하며 이란 당국에 무력으로 맞설 태세를 갖추고 있다"며 "다음 시위는 훨씬 더 치명적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시위 경험을 축적한 익명의 사케즈 주민(27)은 "우리는 다음 충돌에 대비하고 있다"며 "필요한 것은 스파크뿐"이라고 WP에 말했다.
히잡을 쓰지 않은 혐의로 기소된 여성들을 변호했다가 수차례 수감됐던 이란 인권변호사 나스린 소투데(60)는 미 CNN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시민들은 여전히 정권 교체를 원한다"며 "시위 배후의 분노는 여전하다"고 강조했다.
이란 인권운동가통신(HRANA)에 따르면, 현재까지 최소 529명의 시위대가 숨지고 약 2만 명이 구금됐다. 4명의 사형이 집행됐고, 107명이 사형 선고를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