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와 경제가 집중된 도시와 그 도시들을 잇는 도로망은 어느 쪽이 먼저 생겼을까? 이 질문은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질문과 마찬가지로 정답이 없다. 도시가 있으니 교통 수요가 늘어서 길을 닦아야 하고, 길이 있으니 다시 사람들이 모여서 도시가 발전한다. 그러나 현대에 들어서는 국가의 역할이 커지면서 정부 주도로 신도시나 공단을 건설하고 동시에 대규모 도로망을 건설하여 효율적인 국토개발을 도모하는 방식이 도입되었다. 수도권의 신도시들이나 울산 여수 등지의 대규모 공단들은 이런 계획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전력산업에서 발전시설들과 이들을 연결하는 송배전망의 관계도 시대와 기술의 변천에 따라 변화하고 있다. 원자력이나 석탄발전 등 대규모 발전시설들이 일부 지역에 집중되어 건설되던 시기에는 발전소를 먼저 계획하고 이에 맞추어 송전망을 건설하였다. 송전망은 대규모 전기를 보내는 설비로서 고속도로에 비유할 수 있다. 발전소 건설비용에 비하여 송전망 건설비용이 상대적으로 낮았기 때문에 발전소 완공 시점에 맞추어 송전망을 건설하는 것이 크게 어렵지 않았다. 그런데 태양광이나 풍력 등의 재생에너지 비중이 증가하면서 이런 관계에 변화가 오기 시작했다. 기존 발전소에 비하여 규모가 작은 재생에너지 발전소들은 대부분 민간 주도로 정부나 지자체의 인허가만 획득하면 누구나 건설할 수 있다. 이렇다 보니 전국 곳곳에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자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고 이들을 송배전망에 연결시켜 달라는 요구가 급증하고 있다. 참고로 소규모 발전소들은 도로망에서 국도에 해당하는 배전망에 연결된다. 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해서 이들을 하루빨리 전력망에 연결해야 하지만, 제한된 자원으로 이들 요구를 모두 즉각적으로 수용하기는 어렵다. 그 결과 송배전망 연결 여부에 따라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자들의 이해가 갈리고 있으며 한전과 정부에 대한 민원과 불만도 함께 쌓이고 있다. 마치 여기저기 집들을 지어놓고 서로 먼저 길을 내어달라고 요구하는 형상이다. 도로나 지하철 계획에 따라 부동산 가격이 오르내리듯, 송배전 계획에 따라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의 가치도 오르내리고, 투기와 로비, 알박기 등 부동산에서 보던 문제들이 재현될 조짐도 보인다.
소형 재생에너지 설비를 전국 구석구석에 분산 배치하여 국토 활용성을 높이고 송전수요를 줄이는 것도 좋지만, 이런 방법만으로는 재생에너지를 정부의 계획대로 신속히 확대시키기 어렵고 부작용도 많이 발생한다. 재생에너지도 규모의 경제성이 크기 때문에 대규모 지역단위 개발이 병행되어야 하고, 이를 위해서 국토개발계획에 따라 공단과 고속도로를 동시에 건설하는 것과 유사한 방식으로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이 필요하다. 우리나라 기후와 지형, 환경과 주민수용성, 토지비용 등을 고려하여 재생에너지의 잠재력과 경제성이 높은 지역을 선정하여 재생에너지 집중지역으로 지정하고 선제적으로 송배전망 등 인프라를 건설하는 한편 인허가 과정도 간략하게 해야 한다. 그리고 거기에 입지하여 전기를 생산할 사업자들을 입찰 방식으로 선정함으로써 전기 구매가격을 낮추는 동시에 인프라 건설 및 유지 비용도 회수할 수 있다. 발전사업자들 입장에서도 정부 인허가와 전력망 연결에 대한 불확실성이 줄어 사업 추진이 더 쉬워진다.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주체는 중앙정부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