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양천어르신종합복지관 포켓볼 동호회
‘따~악, 따다닥’
큐를 떠난 흰 공이 경쾌한 파열음을 내면서 삼각형으로 모여 있는 15개의 공에 부딪치는가 싶더니 이내 2개의 공이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듯 녹색테이블 구석 구멍으로 돌진한다. 검정색 8번공 뒤에 살짝 고개를 내민 노란색 1번공을 흰 공으로 얇게 맞춰 또다시 구멍에 쏙 집어 넣고는 보조 브릿지(큐걸이)를 이용해 다음 공까지 넣는 모습이 보통 실력은 아니다. 백발에 구부정한 허리, 주름 가득한 얼굴이지만 공과 큐 끝을 매섭게 꿰뚫어 보는 눈매는 영락없는 프로 당구 선수들이다.
지난 3일 서울 양천구 신정동 양천어르신종합복지관 체력단련실 한 켠. 2대의 포켓볼 당구대에 15명 남짓한 어르신들이 포켓볼을 즐기고 있다. 이들은 모두 여성으로만 구성된 양천어르신종합복지관 포켓볼 동호회원들이다. 전체 회원이 50여명인 이 동호회는 65세부터 가입이 가능한데 최고령은 94세까지 있을 정도로 연령대도 다양하다.
총무를 맡고 있는 이순희(72)씨는 “우리 동호회는 복지관이 생긴 이후 25년째 이어지고 있다”며 “70대와 80대 연령의 회원분들이 많은데 특히 80대가 전체 회원의 30%를 차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주말과 공휴일을 제외하고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열려 있는 동호회 방은 시간이 날 때면 아무 때나 들러 포켓볼을 즐길 수 있다. 모임 날짜가 별도로 있는 것이 아니지만 하루 평균 30여명의 회원들이 찾는다. 회비도 1년에 2만4,000원으로 큰 부담이 되지 않아 복지관을 찾는 어르신들에게 인기가 많다고 한다. 동호회 초창기 멤버들은 포켓볼 경력이 20년이 넘다 보니 이들이 초보 회원들의 길잡이 역할도 해준다.
그렇다면 고령의 어르신들이 생각하는 포켓볼의 매력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큰 힘이 들어가지 않아 시니어가 즐기기 알맞은 스포츠다. 포켓볼을 치기 위해서는 포켓볼 당구대 옆으로 계속 걸어야 한다. 국민체육진흥공단에 따르면 당구를 1시간 치면 2㎞ 이상 걷는 효과와 맞먹는다.
20년째 포켓볼 동호회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서웅부(88)씨는 “전에는 재즈댄스도 하고 탁구도 쳤는데 관절 수술을 하고 나서는 무릎에 무리가 가서 다른 운동은 할 수 없는데 포켓볼은 괜찮다”면서 “내 몸에 무리가 가지 않을 만큼 걷다가 다른 사람이 공을 치는 동안은 의자에 앉아서 쉴 수 있어서 노인들에게는 참 좋은 운동이다”라고 당구 예찬론을 펼쳤다.
포켓볼은 특히 무더운 여름이나 추운 겨울 동안 야외 활동이 쉽지 않은 고령자들이 적당한 신체활동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덴마크 코펜하겐 노후건강연구소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1주일에 적어도 4차례 당구를 치는 70~95세 어르신들이 당구를 치지 않는 같은 연령대에 비해 건강 상태가 매우 양호한 것으로 조사됐다. 관절에 큰 무리를 주지 않으면서 신체활동량을 늘릴 수 있으며 정서와 사교에 긍정적으로 작용해 자칫 무료해 지기 쉬운 노년층 삶의 질을 높여준다는 것이다.
이순희 총무는 “공을 치는 스트로크를 통해 허리를 굽혔다가 펴는 것을 반복하고 앉았다 일어났다를 반복하다 보니 근력도 키울 수 있다”면서 “가장 좋은 점은 대부분의 회원들이 매일 나오다 보니 친구를 만날 수 있고 대화를 할 수 있다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또 포켓볼은 집중력 향상에 좋다. 당구공은 둥글고 회전이 가미되면서 여러 가지 물리적인 변화와 함께 기하학적인 형태로 움직인다. 공을 얇게 맞히거나 두껍게 맞혀 각도를 조절하는 상황에 따라 눈과 손의 협응력도 향상될 수 있다.
특히 포켓볼은 지금 당장 공략해야 할 공 외에 다음, 그 다음 공략할 공의 위치 등을 고려하는 전략도 세워야 한다. 결국 수만 가지 경우의 수가 있기 때문에 시행착오를 겪으며 익혀온 기술을 발휘하면 치매 예방에도 큰 도움이 된다고 한다.
건강에 도움이 된다고 하더라도 재미가 없으면 지루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포켓볼은 승패가 걸려 있고 비교적 빠른 시간 안에 승패가 결정되므로 재미도 있다. 김복순(87)씨는 “작은 공을 맞추고 각도를 재는 것이 어렵지만 그래도 재미있다”면서 “전신운동이 되는데 몸에 무리도 되지 않고 재미까지 있으니 노인들에게 이보다 더 좋은 운동이 있겠냐”고 포켓볼의 매력을 설명했다.
다만 아직은 많은 어르신들이 포켓볼을 즐기기에는 여건히 충분치가 않다. 대한당구연맹 관계자는 "고령자들이 편하게 포켓볼을 즐길 수 있는 곳이 아직은 많지 않다"면서 "일부지역의 노인복지관 등에서만 포켓볼 당구대가 갖춰져 있고 이마저도 이용자들 수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고 아쉬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