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렌식으로 드러난 bhc 회장 거짓말... 치킨전쟁 도화선이었다

입력
2023.02.22 13:00
10년 간 법정서 싸우고 있는 제너시스 BBQ - bhc 
사건의 발단은 2013년 미국 사모펀드로 bhc 매각
매각 주도했던 박현종 회장, BBQ → bhc 수장으로
이후 국제중재법원에 BBQ 제소, 민·형사 소송 시작 
"본인이 수행한 거래를 부정... 자기 부정에 가까워"
박 회장, 국정감사서 "BBQ에서 매각 책임자 아냐"  
포렌식서 드러난 거짓말... 법원 "당시 핵심적 역할"

편집자주

끝난 것 같지만 끝나지 않은 사건이 있습니다. 한국일보 기자들이 사건의 이면과 뒷얘기를 '사건 플러스'를 통해 생생하게 전달합니다.

'치킨게임'을 하고 있는 대형 치킨 프랜차이즈 회사들이 있다. 한 가족이나 다름없었던 제너시스BBQ와 bhc는 2013년 갈라선 뒤 10년 동안 사생결단 치킨게임을 이어가고 있다. 법적으로 마무리된 사건도 있지만, 손해배상 소송부터 위증 교사 혐의까지 진행 중인 민·형사 소송만 20여 건에 달한다. 두 회사는 도대체 왜 이렇게 죽기 살기로 싸우고 있는 걸까. '치킨전쟁'의 방아쇠를 당긴 것은 누구일까.

10년 전 도대체 무슨 일이

사건의 발단은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bhc는 2004년 BBQ에 흡수된 뒤 한 지붕 아래 있었다. 그러다가 2012년, BBQ는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bhc 매각을 추진했다.

박현종 bhc 회장은 당시 BBQ의 부사장으로, ‘bhc 매각’ 프로젝트를 진두지휘했다. 삼성그룹 출신인 박 회장은 2012년 5월 BBQ에 입사해 2013년 6월까지 BBQ 해외글로벌사업부 대표(부사장급)로 재직했다. 그는 미국계 사모펀드 CVCI(현 더로하틴그룹)의 상무 조고든 엘리어트와 접촉한 뒤, CVCI의 bhc 매수 의향을 BBQ 수뇌부에 전달했다.

BBQ는 박 회장을 연결고리로 bhc를 2013년 6월 CVCI에 1,130억 원에 매각했다. BBQ 임원이었던 박 회장은 매각 직후 bhc 대표이사로 자리를 옮겼다. CVCI가 “박 회장을 bhc의 대표로 오게 해 달라”고 BBQ 측에 요청했기 때문이다.

“본인이 수행한 거래에 하자가 있다고, 본인이 주장”

BBQ의 bhc 매각은 성공적으로 보였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매각한 지 1년이 지난 상황에서, bhc를 사들인 CVCI는 계약에 하자가 있었다며 BBQ에 100억 원의 잔금 지급을 거부했다. 또 “BBQ가 매각 당시 점포 수를 부풀려 실제 회사 가치보다 비싸게 팔았다”며 국제상공회의소(ICC) 산하 국제중재법원에 BBQ를 제소했다.

BBQ 입장에선 뒤통수를 얻어맞은 셈이었다. 이를 두고 전재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020년 국회 국정감사에서 “본인(박현종 회장)이 직접 수행했던 (bhc 매각) 거래에 하자가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bhc에서 경영을 책임지게 된 박 회장이, 과거 BBQ 재직 당시 책임졌던 bhc 매각 과정에 문제가 있었다며 소송을 제기한 것은 자기 부정에 가깝다는 취지였다.

BBQ는 ICC 소송에서 패소하며 CVCI에 약 98억 원을 배상했다. BBQ는 소송 패소 배경에 대해 “매각 관련 자료가 회사에 남아있지 않았기 때문에, 손해배상 책임을 고스란히 떠안을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BBQ에 재직할 때 매각 업무를 주도한 박 회장과 담당자들은 ICC 소송 당시 이미 bhc로 이직한 상태였다. 박 회장은 ICC 소송 당시 CVCI 측 증인으로 출석해 “bhc 매각계약을 주도하거나 총괄한 바 없다. 실사 과정에도 관여한 바 없다”고 주장했다. 매각 과정에서 발생한 이메일 등 업무기록에 자신의 이메일이 수신인에 없다는 점을 근거로 내세웠다.

끝없는 치킨게임... ‘경쟁사 죽이기’ 제보 사주까지

ICC 소송 이후 두 회사의 싸움은 본격화됐다. bhc는 특히 경쟁사인 BBQ를 죽이기 위해 회장과 임직원이 조직적으로 개입하기도 했다. (▶관련기사: [단독] 'BBQ 죽이기'에 BHC 회장부터 임직원까지 관여했다) 박 회장은 2019년 전직 BBQ 직원에게 수사기관에 거짓 제보를 하도록 시켜 윤홍근 BBQ 회장의 회삿돈 횡령 의혹을 이슈화했다. 회사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은 BBQ는 2년간의 법적 투쟁 끝에 제기된 의혹 대부분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두 회사의 감정의 골은 더욱 깊어졌다. 신뢰관계가 깨지면서 소송전에도 불이 붙었다. BBQ는 2013년 bhc를 매각하면서 소스와 파우더 등을 bhc로부터 공급받기로 10년 독점 계약을 맺었다. BBQ는 그러나 “bhc가 사업 매뉴얼과 레시피, 사업 계획서 등 중요 정보를 빼돌렸다”며 계약을 파기했다. 두 회사는 계약 파기 이후 현재까지 상품공급‧물류대금 해지 소송, 영업비밀침해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소송, 상표권침해금지 소송 등을 진행 중이다. 소송 금액만 4,000억 원이 넘는다.

갈등은 두 회사 오너를 겨냥한 형사소송으로도 번졌다. 박 회장은 경쟁사인 BBQ 직원의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이용해 ICC 소송이 진행 중이던 2015년 BBQ 전산망을 해킹해 274차례 무단 접속한 혐의로 법정에 섰다. 박 회장은 1심에선 징역 6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박 회장이 BBQ와의 ICC 소송에서 우위에 서기 위해 직접 나선 범행으로 보이므로 죄질이 가볍지 않다”고 밝혔다.

자기 회사와 아무 관련이 없는데도, 변호사를 대거 선임해 상대 회사를 고발하는 일도 있었다. bhc는 2021년 윤 회장을 배임 혐의로 고발했다. BBQ가 오너 개인회사에 회삿돈을 빌려줘 손해를 끼쳤다는 이유에서다. bhc는 고발장에서 “잘못된 오너십과 경영 관행에 경종을 울리기 위해 수사 의뢰했다”고 밝혔지만, 업계에선 ‘보복용 고발’이라는 뒷말이 나왔다. bhc가 BBQ 내부에서 벌어진 일을 문제 삼아 소송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경찰이 이 사건을 혐의 없음 불송치 처분하자 bhc는 이의신청을 했고, 결국 검찰은 이달 초 윤 회장을 불구속기소했다.

디지털 포렌식 증거로 드러난 bhc 회장의 거짓말

bhc는 그동안 매각 책임과 관련된 소송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해왔다. 치킨전쟁의 시작이었던 ICC 소송 결과가 이후 다른 소송에서도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ICC 소송에서 패소했던 BBQ가 2017년 “가맹점 수를 부풀린 책임은 매각 책임자였던 박현종 bhc 회장에게 있다”며 박 회장을 업무상 배임 등 혐의로 고소했지만 무혐의 처분된 것이 대표적 예다. ICC 소송 당시 증거자료를 제시하지 못해 패소했던 BBQ는 ICC에 재심 제도가 없어 이를 바로잡을 길이 없었다.

그러나 최근 BBQ가 디지털포렌식 작업으로 증거를 복구해 내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BBQ는 박 회장이 BBQ 재직 당시 bhc 매각 업무를 담당할 때 업무기록을 복구해 증거로 제출했고, 법원이 이를 증거로 인정한 판결을 내렸기 때문이다. 서울고법 민사18부(부장 정준영)는 지난달 13일 BBQ가 박 회장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 항소심에서 “박 회장이 BBQ 등에 28억 원의 배상금을 지불하라”며 원고 승소 판결했다.

쟁점은 bhc 매각 당시 박 회장의 책임 범위였다. 재판부는 “박현종 회장은 중재절차에서 '구체적인 사업 내용에 대한 실사자료를 검토하거나 관리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다'는 사실과 다른 진술을 했다”며 “BBQ는 이로 인해 손해배상 책임을 지게 됐다”고 판단했다. 박 회장이 bhc 매각 계약에 관여했다는 사실을 인정한 것이다.

재판부는 박 회장이 당시 주고받았던 메일의 참조 수신인으로 기록돼 있는 포렌식 결과를 토대로, 매각 관련 서류 작성 과정에서 핵심적 역할을 했으며 선관주의 의무(선량한 관리자의 주의 의무)를 위반했다고 지적했다. bhc 측은 “박 회장이 등기이사로 등재된 것만으로 책임을 물어야 하는 건지 명확히 따져볼 것”이라며 대법원에 상고했다.

치킨전쟁, 어디까지 갈까

10년간 멈추지 않았던 BBQ와 bhc의 치킨전쟁은 앞으로도 지속될 전망이다. BBQ는 남은 소송 7건에서 디지털 포렌식을 통해 복구한 박 회장의 BBQ 재직 당시 업무기록이 향후 '판도라의 상자'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 수사 과정에서 박 회장이 BBQ 내부망에 불법 접속한 혐의가 드러난 만큼, 포렌식 자료와 검찰 수사 내역을 기반으로 사실관계를 바로잡야아 한다는 것이다. BBQ는 박 회장이 모든 분쟁의 발단이 된 bhc 매각 계약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고 보고 있다.

본보는 bhc의 입장을 듣기 위해 약 10여 차례 연락했으나, bhc측은 답변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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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소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