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크 음악은 듣고 있으면 참 좋다. 때로는 성스럽고 고요하며 때로는 정교하고 치열한 음표들의 싸움이 펼쳐지지만, 결국은 자연스럽고 담백해 귀를 거스르지 않는 그 시대 음악 소리가 아주 먼 곳으로 여행을 다녀온 느낌을 갖게 해 준다.
헨델은 멜로디가 대단히 아름답다. 특히 성악 레퍼토리를 듣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호흡이 평온해진다. 바흐는 정교하고 준엄한 형식 안에서 만들어내는 반전의 낭만이 헤어나오지 못하게 한다. 라모는 신비롭고 단아하고 정갈하다가도 원시적 리듬감을 나타내 반하게 된다. 듣다 보면 17세기 어느 궁정의 무용수가 된 것처럼 자세와 턱선도 가다듬게 만드는 마력이 있다. 사제였던 비발디의 작품은, 특히 성악곡을 들으면 세상의 모든 혼란스러움이 천천히 차분하게 맑아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페르골레지, 퍼셀, 다울랜드, 포르포라... 이름도 낯선 먼 나라, 먼 시대의 음악이지만 그때의 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과거의 시간과 문화에 대해 더 알고 싶어지고 궁금해진다.
지휘자 푸르트벵글러는 “바그너와 낭만 시대 음악가들은 바흐와 헨델에게서 자기 자신을 찾았다. 요즘의 우리는 더는 우리 자신을 찾으려 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오늘날 고음악 연구에 대한 중요성을 강하게 언급한 적이 있다. 역사를 바로 아는 것이 현재와 미래의 삶을 위해 중요한 것과 마찬가지로 음악의 과거를 잘 아는 것 역시 중요하다.
음악의 기록은 미술과 달라서 옛 시대의 작품을 원하는 때에 즉각적으로 보거나 들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악보를 찾아 시대 악기와 주법을 연구한 좋은 연주자가 그 소리를 품을 수 있는 적절한 시기와 공간에서 들려주는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 과거 악기와 연주 방식을 연구하고 연주해 새로운 세계를 열어 준 고음악의 거장들,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 윌리엄 크리스티, 존 엘리엇 가디너, 조르디 사발 등의 존재가 고맙고 소중할 수밖에 없다.
최근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헨델의 모음곡 1번(빌헬름 켐프 편곡 버전)을 연주한 앨범을 발매했다. 헨델의 작품은 당시 건반 악기였던 하프시코드를 위해 쓴 곡이다. 현을 뜯는 하프시코드와 현을 해머로 치는 피아노의 음량과 음색, 연주법은 차이가 크다. 엄격하게 따지자면 헨델의 작품은 그 시대 악기인 하프시코드로 연주해야 하지만 피아니스트에게 하프시코드는 건반이 있다는 공통점 외에는 다른 악기다. 조성진은 “헨델과 바흐가 현대 피아노 연주 버전을 좋아할는지는 모르지만 바로크 음악은 해석의 폭이 넓은 만큼 누구는 낭만적으로 연주할 수도 있고 글렌 굴드처럼 할 수도 있다”면서 자신의 방식대로 해석한 헨델을 선보였다.
그런가하면 비올라 다 감바라는 현악 고악기의 최고 해석자인 조르디 사발은 함께 고음악 연구를 해 왔던 자신의 오케스트라, 합창단과 함께 고전을 상징하는 베토벤 교향곡 전곡 녹음반을 내놓았다. “너무 유명하고 자주 연주돼 과부하 걸린 베토벤 교향곡에 새로운 에너지를 선사해 주고 싶었다”는 사발은, 9개의 교향곡에서 베토벤의 존재감은 유지하되 빠른 템포로 무게를 줄이고 청량하고 맑고 담백한 음색, 소위 ‘바로크적인’ 조합으로도 베토벤 음악의 감동을 표현했다.
바로크 시대 악보를 보면 작곡가가 연주에 대한 지시어를 빼곡하게 채워 넣지 않았다. 악기에 대한 연구도 덜 돼 주법도 다양하지 않았고 연주할 수 있는 사람 혹은 성별도 제한됐다. 덕분에 바로크 시대 작품은 오늘날의 여러 악기와 성악가가 연주하면서 해석의 여지를 넓혀가고 있고 특히 여성 성부를 대체했던 보이 소프라노나 카운터테너 레퍼토리는 체칠리아 바르톨리를 비롯한 여성 성악가들에 의해 불리기도 한다.
악기와 주법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만나는 바로크 음악의 다양성도 흥미롭지만 한 번쯤 정격의 바로크 무대를 만나보는 것도 좋겠다. 3월 5일 카운터테너 필리프 자루스키와 앙상블 아르타세르세가 ‘신화’(오르페오)를 바탕으로 한 작품을 연주한다(성남아트센터). 4월에는 이탈리아의 대표적 바로크 음악단체인 일 자르디노 아르모니코와 카운터테너 김강민이 통영국제음악제에서 공연한다. 공교롭게도 두 단체는 바로크 음악을 상징하는 중요한 ‘악기’인 카운터테너와 함께한다. 음악 경연 TV 프로그램 '팬텀싱어' 덕분에 대중에게도 카운터테너의 인지도가 넓어졌는데 이들 음악의 원류는 어디에서 온 것인지, 세계적 고음악 전문가들의 무대를 직접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색다른 경험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