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대학로 무대에 오르며 연기 데뷔식을 치렀다. 공연계에서 실력자로 소문난 후 카메라 앞으로 옮겨왔다. 영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2009)으로 처음 얼굴을 비친 후 여러 영화에서 조연으로 활동했다. ‘범죄도시’(2017)로 누구나 알아볼 배우가 됐다. 데뷔한 지 19년. 처음 단독 주연하는 영화 ‘카운트’가 개봉(22일)한다. 15일 오후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난 배우 진선규(46)는 “관객이 어떻게 봐줄지에 대한 두려움이 없다면 거짓말”이라며 “단두대에 올라가 있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카운트’는 1988년 서울올림픽 복싱 금메달리스트 박시헌의 사연을 다룬다. 박시헌은 편파판정 덕에 금메달을 따냈다는 비난에 시달렸던 인물이다. 영화는 경남 진해(현 창원시 진해구) 한 고교 체육교사로 일하며 아픔을 삭이던 박시헌이 승부조작 피해를 본 윤우(성유빈) 등 복싱 제자들을 신념과 믿음으로 길러내는 과정을 전한다. 고통받는 인물들이 역경을 이겨내는 과정에서 빚어내는 눈물과 웃음이 감동을 자아낸다. 진선규는 “(박)시헌 선생님의 사연을 몰랐다”며 “시나리오를 처음 접한 순간부터 대사를 소리 내어 읽을 정도로 빠져들었다”고 말했다.
진해는 진선규의 고향이기도 하다. 대학 진학을 위해 떠나기 전까지 자란 곳이다. ‘카운트’ 촬영이 남달랐던 이유 중 하나다. 진선규는 “시나리오에 나오는 장소들이 제가 어린 시절 놀던 곳이라 읽을 때 눈에 선명히 떠올랐다”고 했다. “북한 말, 연변 말투, 강원도 사투리 등으로 연기했던 이전 작품들과 달리 고향 사투리를 쓰니 마음이 편했다”고 덧붙였다. “촬영을 위해 오랜만에 진해에 갔는데 모르는 분들이 ‘진해의 아들’이 왔다며 저를 반기시더라고요.”
진선규는 첫 단독 주연작을 촬영하며 “부족한 게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조연이나 단역 배우분들이 잘해주시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 “이를 위해 모든 배우들과 1대 1로 만나 대본 읽기를 따로 했다”고 말했다. 진선규는 “영화를 보니 제 연기는 부족한데 저보다 작은 역할을 해주신 분들이 잘 채워주셨다”고 밝혔다.
복싱은 진선규에게 익숙한 운동이다. 36세 때 살을 뺄 요량으로 시작한 운동이 10년 넘게 취미가 됐다. 진선규는 “기본 동작은 나오는데 정작 코치로서 연기를 해야 하니 펀치를 받아주고 공격을 취하는 동작을 익히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성유빈 등과 아침부터 저녁까지 함께하며 2달 반 동안 체육관에서 땀을 흘렸다.
진선규가 연기의 세계를 접한 건 고3 여름방학 때다. “친구 따라 어느 지하공간 극단에 놀러 갔다가 알 수 없는 '온기'를 느껴 2달을 그곳에서 보냈다”. “2주 동안 독백 3개만 연습해 한국예술종합학교(연극원) 실기시험을 봤고” 덜컥 합격했다. “셰익스피어 4대 비극이 뭔지도 몰랐던” 그는 대학 졸업 후 대학로 무대에 오르며 연기에 더욱 빠져 살았으나 유명 배우가 되기까진 오랜 시간이 걸렸다. 진선규는 “연기가 좋고 연기를 하면 행복하니까 꾸준히 하다가 ‘범죄도시’가 저한테 보상을 해준 거”라고 말했다. 그는 “꾸준히 성실하게 하면 능력이 생기고 재능까지 만들어지는 듯하다”고도 했다. 자신은 언제쯤 재능이 생긴 듯하냐고 묻자 “처음엔 대학로에서 연기 못한다 소리 듣다 5년쯤 뒤부터 연기 잘한다는 말을 들었는데, 그쯤 아닐까 생각한다”고 답했다.
진선규의 아내는 드라마 ‘작은 아씨들’(2022)로 유명한 배우 박보경이다. 박보경과 장모님은 개봉을 앞두고 스태프와 배우들 지인들을 위해 열린 시사회에서 ‘카운트’를 봤다. 진선규는 “장모님이 시사회에 오신 건 처음”이라고 했다. “장모님이 아이들을 돌봐주시는데, 이전 출연작 대부분이 청소년 관람불가라 애들을 두고 나오실 수 없었기 때문”이다. “박시헌 선생님이 복싱과 가족, 동료의 힘으로 시련을 이겼듯이 제게는 연기와 가족, 동료가 힘인 듯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