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민생요금 속도 조절'에 끙끙 앓는 한전‧가스공사..."불똥 튄 산업용 요금 더 오르나"

입력
2023.02.16 21:00
20면
주택용 요금 인상 줄이면 
①사채 발행 ②은행 차입 ③산업용 요금 인상 가능성 높아져
전문가들 "LNG 2025년까지 상승...요금 정상화로 절약 유도해야"


윤석열 대통령이 에너지 요금 인상 속도 조절 카드를 꺼내면서 엄청난 적자에 힘겨워하고 있는 한국전력공사와 한국가스공사는 전전긍긍하고 있다. 정부가 2분기 전기·가스요금을 올릴 여지는 뒀지만 천문학적 규모인 한국전력공사의 적자, 한국가스공사의 미수금을 만회할 만큼 충분한 인상은 어렵게 됐다는 관측에 무게가 실린다. 정부가 속도조절 명분으로 서민 부담 최소화를 내세운 만큼 주택용 전기·가스 요금이 덜 오르는 대신 산업용 요금이 인상되는 것 아니냐는 걱정도 나온다.

한전 관계자는 16일 "(요금 인상에 관해) 정부와 논의 중"이라는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였다. 그동안 정부에 요금 인상을 요청해 온 가스공사 역시 "올해 2분기 인상을 확정한 적은 없었다"고 한 발 물러났다. 물가 안정에 관한 법률에서 전기‧가스요금은 공공요금으로 분류되는데 전날 기획재정부가 상반기 공공요금 동결을 시사하면서 에너지업계에서는 전기·가스요금도 동결될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에너지 가격 동향, 국민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종합적으로 따져보고 요금 인상 폭과 속도를 결정할 것"이라는 원론적 답변을 내놨다. 앞선 문재인 정부 시절의 요금 인상을 '포퓰리즘'이라며 적극적으로 올릴 것이라 했던 것과는 사뭇 달라진 모습이다.

정부가 주택용 전기·가스 요금 인상을 억누르려 하는 만큼 산업용 요금이 더 오를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에너지업계 관계자는 "유가 등락에 따라 전기요금을 조정하는 연료비 연동제가 2020년 도입된 후 이제까지는 사용처와 상관없이 모든 전기료를 똑같이 올렸다"며 "그런데 만약 주택용 전기료만 인상 폭을 줄이면 산업용이 올라갈 가능성도 있다"고 예상했다. 그러면서 "연동제 도입 취지가 무색해지는 셈"이라고 걱정했다. 연료비 연동제를 산업용 요금에만 적용하는 도시가스는 이미 산업용 요금(MJ당 31.3원)이 주택용 요금(18.4원)보다 비싸다. 주택용 가스요금 인상을 억누르면 이 격차가 더 벌어질 수 있다.



정부 발표 후 한전·가스공사 주가는 곤두박질



천연액화가스(LNG) 가격이 2025년까지 꾸준히 오를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차라리 에너지 가격을 현실화해 절약을 적극적으로 유도해야 한다는 제안도 나온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는 "천연가스 액화시설은 화석연료시설이라 ESG(환경·사회·지배구조)를 강조하는 최근 글로벌 환경에서 늘지 않았다"며 "유럽이 러시아 에너지 의존도를 낮추기로 한 최근에야 시설투자 계획이 세워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이 시설은 2026년에서야 가동에 들어가기 때문에 많은 유럽 국가들과 일본은 가격을 올려 국민들이 에너지를 덜 쓰도록 유도했다"며 "독일은 천연가스 사용량을 절반으로 줄이는 데 성공했다"고 말했다. 전기‧가스요금 인상을 미룰 경우 자칫 국민들에게 "맘껏 써도 된다는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는 말이다.

에너지 요금 인상에 제동이 걸리면서 두 공사의 천문학적 손실이 다른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적자 상태인 두 공사가 요금 인상 폭을 줄이려면 회사채를 더 발행하거나 은행에서 돈을 꿔야 하는데 이럴 경우 지난해 10월처럼 중소기업들이 회사채를 발행하지 못하는 등 금융 시장 왜곡이 생길 수 있다.

대규모 손실이 추가로 전망되면서 한전과 가스공사 주가는 급락했다. 정부 민생대책 발표 하루가 지난 16일 두 공사 주가는 이틀 전보다 각각 4.4%, 2.3% 떨어졌다.

이윤주 기자